기억이 왜곡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난 역사 점수가 꽤 높은 학생이었다. 수업도 정말 열심히 들었고, 암기해서 정답 찾는 것도 잘 했으니까. 하지만, 역사적 사건, 역사 속 인물을 현재에 적용하여 고민해 본 적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역사는 지나간 이야기,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 감사한 분들 혹은 나쁜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만 여겼었다. 학교 졸업 후에는 더더욱 역사에 대한 관심은 낮아졌고, 한 번씩 TV에 나오는 얘기들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거나 분노하거나 하는 정도이다.
최태성 선생님의 신간 <역사의 쓸모>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역사는 '쓸모'있는 것이라고, 지금 현재에도 유용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올해 초 <백범일지>를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이 또 다시 솟아 올랐다. 몇몇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편하지만 그른 길과 험난해도 바른 길 앞에 서 있을 때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를, 역사의 무서움을 기억한다면 바른 선택이 가능할까? 최태성 선생님은 그런 역사의 힘을 기억하라고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역사에 남은 이들 존경받는 이들은 기어이 그런 길을 선택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회영'이었다.
p.225
편히 살 수 있는 신분을 버리고, 재산을 바치고, 인생을 내던지며 오로지 독립 하나만을 바라보았던 이회영은 30대 청춘의 나이에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한 번의 젊음을 어찌할 것인가?' 그는 죽음을 맞이한 순간에야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말이 아니라 예순여섯 해의 '일생'으로 답했던 것입니다.
우당 이회영 선생님의 이야기와 함께 역사를 공부할 때 바라보아야할 시각에 대해서도 일깨줘 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p.221
독립투쟁단체들의 이동 경로를 외우려고 하지 말고 한번 머릿속에 그려봅시다. 그들은 수천 킬로미터를 움직였습니다. 낮에 다녔을까요? 아닙니다. 일본군을 피하기 위해서 밤에 다녔을 거예요. 평지로 편하게 다녔을까요? 아닐 겁니다. 역시 일본군을 피하기 위해 험한 산을 행군했을 겁니다. 만주가 얼마나 추운 곳입니까? 그 추운 땅에서 칼바람을 맞으면서 다닌 그 길이 화살표로 그려져 있는 거예요. 우리는 그 화살표를 그냥 화살표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그들의 발자국을 봐야 합니다.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지금 직면한 어려움에 자포자기하지 말고, 멀리 내다보는 힘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받았다.
pp.75~76
정약용은 자신이 계속해서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도 밝히고 있습니다. 만일 자신이 지금의 생각을 남기지 않는다면 후세 사람들은 형조에 있는 죄목만 보고 자신을 죄인 정약용으로 기억할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끊임없이 기록하겠다는 것입니다.
출세의 길이 막혔다고, 죄인이 되었다고, 폐족이 되었다고 자포자기하여 손 놓고 있지 않았습니다. 정약용은 형조에 기록된 몇 줄짜리 글로 평가받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글을 남겨 후세의 평가를 받으려 했습니다.
(생략)
교과서를 한번 펼쳐보세요. 정약용이 어떤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까? 죄인 정약용? 아닙니다.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로 기록되어 있어요.
이외에도, 신라의 구진천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는데, 자신의 이익보다 나라의 이익을 우선시 할 수 있는 그 신념에 감탄했다. 또 서희의 협상 실력에도 무릎을 쳤다.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흥미롭게 다가오는 시간들이었다. 흥미에 더해서, 역사를 공부하는 의미, 책을 읽고, 고민하고 생각하는 의미에 대해서도 되돌아 보게하는 의미있는 독서 시간이 되었다. <역사의 쓸모>를 읽을 수 있어 참 감사했다. 선물해 준 책 친구에게도 고맙고, 함께 읽고 있을 책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하니 더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