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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루저의 나라

[도서] 우아한 루저의 나라

고혜련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신라의 향가인 처용가에 나오는 인물은 아랍인라는 설이 있으며 경주 괘릉에는 아랍인을 꼭 닮은 석상이 서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개성 인근의 벽란도에 많은 외국인이 찾아와 문전성시를 이루며 교역을 하였네요. 하지만 조선은 쇄국 정책을 펴면서 중국 및 일본 외에는 나라의 문을 걸어닫았습니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서양인을 만나기도 하고 제주도에 표류한 벨테브레나 하멜 등에 의해 희미하게나마 유럽의 존재를 알고 있었네요. 조선 말기가 되면 서양에서 강제로 통상을 요구하면서 선교사나 외교관, 학자, 상인 등 많은 사람들이 조선을 찾아왔습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지은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을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우아한 루저의 나라' 에서는 독일인 3명이 각각 조선을 방문한 후 남긴 기록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사벨라는 여행이 목적이었던 만큼 우리나라 곳곳을 둘러보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우호적이었던 반면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경제적, 정치적 목적이 있어서인지 보는 관점이 조금 다르네요.

 

우리나라를 찾은 독일일 3명은 각각 크노헨하우어(1898년), 예쎈(1913년), 라우텐자흐(1933년)입니다. 중국은 과거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과 교역을 하였었고 문화적으로도 앞섰던 만큼 유럽에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일본 역시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포르투갈, 이후에는 네덜란드와 교류를 하였네요. 반면 우리나라는 미지의 세계에 가까웠는데 금이 많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동아시아의 황금사과로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실제 크노헨하우어는 금광을 찾기 위해 우리나라에 왔고 강원도 당고개 일대를 포함해 여러 지역을 탐험했습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를 소개하는 책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나온 자료를 참고할 수밖에 없었는데 주로 일본에서 나온 책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이 많은데 임나일본부설이 대표적이네요. 일본서기에는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해 수백년간 남부 지역을 다스렸다고 나와 있습니다. 조선 말에는 나라의 질서가 거의 무너지면서 일본의 침략이 가시화되었었기 때문에 외국인으로서 이를 의심하지 않았던것 같아요. 우리나라에 대한 오류를 보면서 조선이 들어선 이후에도 외국과 계속 교류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반면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문화 수준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일본의 판화나 도자기 등이 인기를 끌면서 '쟈포니즘' 열풍이 불었고 많은 예술 작품에도 일본풍이 나타났습니다. 조선에 와서 보니 우리나라의 문화 수준도 그에 못지 않아 감탄하였다고 하네요. 특히 유럽인들은 최초로 금속 활자를 만들고 인쇄술을 발전시켰다는 자존심이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그보다 더 빨리 금속 활자를 만들었고 직지심체요철이라는 책까지 펴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래서인지 조선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시각도 보입니다.

 

이들은 조선에서 생활하면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기록하였다가 독일로 돌아간 후 강의를 하거나 책을 펴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기록들은 오랫동안 먼지가 쌓이면서 존재조차 아는 사람도 드물었지만 저자의 끈질긴 노력 끝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도서관에서 발견해 번역을 하였네요. 덕분에 당시 조선 사회와 사람들의 생활, 그리고 외국인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에 대해 읽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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