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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도서]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레이먼드 카버 등저/파리 리뷰 편/이주혜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땐 과학 서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실제로도 그랬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저자의 이름을 본 순간이었다. 수많은 소설가들이 '카버처럼 단편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을 때의 그 '레이먼드 카버', 작가들의 작가인 그가 이 책의 저자들 중 한 명이었으니까. 레이먼드 카버 앞에 있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역시 작가들이 많이 언급하는 작가였기 때문에, 이들의 글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가장 앞에 배치된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이하 '히치하이킹..')>가 가장 인상깊었던 것 같다. 역자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 책의 제목 또한 그 단편의 한 문장에서 따왔다고 했다. 편집자와 역자 모두 이 소설이 가장 인상깊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 이 책의 모든 단편소설들이 읽고 나면 어느 정도의 여운을 주고, 하나를 읽었을 땐 '아, 이 소설이 제일 기억에 남을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물론 모든 단편이 다 그런 건 아니다;;). 그렇지만 며칠에 걸쳐 책을 다 읽고 났더니, 막상 제일 기억에 남는 소설은 가장 먼저 읽었던 '데니스 존슨'의 <히치하이킹..>이다. 아무래도 첫 단편이니만큼, 화자의 특이한 발화와 시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히차하이킹..>은 아주 짧은 단편 소설이다. 이 책의 단편 소설들 중에서도 짧은 편에 속한다. 약간 오락가락하는 것 같은 화자의 말투 때문에 '읭?' 하는 부분도 있지만, 읽을 때도 대체로 잘 읽혔다(워낙에 짧은 소설이라 줄거리를 쓰면 그냥 대놓고 스포가 되어버릴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소설을 기억에 남게 해 준 건 단편소설 끝부분에 붙은 '해설'이었다. 이 책은 열다섯 명의 작가가 그 동안 <파리 리뷰>에 실렸던 단편소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을 각각 하나씩 고르고 그에 대한 나름의 평을 덧붙이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히치하이킹..>에도 '제프리 유제니디스'라는 작가의 해설같은 코멘트가 붙어 있다. 방금 읽고 지나온 소설을 다시 넘겨볼 마음이 들게 만드는 해설이었다(이 해설을 읽고 나서 본문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읽어봤었다). 내가 별 생각 없이 넘겼던 부분도 다른 소설가가 보기에는 다 의미가 있고, 작가가 고도의 전략을 통해 세워 놓은 장치였다는 걸 해설을 읽고 알았다. 예를 들면, '처음 두 단락은 이야기 속 행위를 전부 드러낸다(30면)'라는 부분을 읽고는 소설의 처음 두 단락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이 소설의 처음 두 단락에 소설 속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한 묘사가 다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나름의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장편소설 쓰기와 비교했을 때 단편소설 쓰기의 주된 문제는 무엇을 생략할지를 아는 것이다. 남겨진 것은 반드시 사라진 모든 것을 함축해야 한다.

(...) 이 이야기와 더불어 존슨의 뛰어난 소설집 <예수의 아이들>에 수록된 모든 이야기에서 존슨은 구성, 배경, 인물 설정, 작가의 설명을 최대한 생략하면서 동시에 이 모든 것을 암시하는 목소리를 찾아낸다. 조각난 목소리는 서사가 결핍된 이유이며, 그리하여 그 자체로 일종의 설명이 된다.

30면

 

 머리로는 알겠는데, 과연 저렇게 쓸 수 있을까. 어쨌든 단편소설을 써볼 생각이 있거나, 습작 중이라면 새겨볼 만한 조언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부분을 읽으며 <히치하이킹..>의 구성을 다시 생각해 보고, 또 한 번 감탄하기도 했다. 글을 써 놓고 줄이는 과정이 더 어렵듯이, 있는 그대로 줄줄줄 쓰는 것 보다 무엇을 생략하고 무엇을 암시할지를 고민하고 하나씩 지워나가는 과정도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약에 취해 정신착란이 있는 듯 보이는 사람이었던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레이먼드 카버'의 <춤추지 않을래> 역시 <히치하이킹..>과 뭔가 비슷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의 등장 인물이나 전개는 완전히 다르지만, 작가가 뭔가를 감추고 독자에게 친절하게 일일이 다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이 유사했던 것 같다. 분량 또한 둘 다 매우 짧은 편이었는데, 분량이 짧다고 해서 가볍게 읽히고 땡! 은 아니라는 걸 이 소설들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독자 입장에선, 오히려 생략과 암시가 많을수록(그럼 당연히 분량도 짧아질 수 밖에..) 독자의 기억에는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소설을 읽고 나면 '이게 뭐지? 왜 여기서 끝났지? 그래서 이 남자와 여자는 무슨 관곈데?' 이런 생각들이 자연스레 떠오르기 때문이다. 작가가 답을 딱 내 놓지 않으면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고, 다음 일을 예상해 보는 등 나도 모르게 능동적 읽기를 하게 되는 것 같다.

 


 

 '글만 좋으면 무조건 싣는다'는 <파리 리뷰>지에 실린 글들이라 그런지, 실험적이고 신선한 글들도 있었지만 평범한 것 같은데도 그냥 재밌고 좋은 소설들도 있었다. 나는 몰랐지만, 정지돈 작가도 '습작 시절의 나는 모든 문예지가 <파리 리뷰>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작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꿀 것이다. 소설을 쓰면 <파리 리뷰>에 실리겠지?' 라 할 만큼 <파리 리뷰>는 파급력을 지니고 있나 보다. 그런 <파리 리뷰>에서도 엄선된 15편의 단편을 읽어봤지만, 이제 그냥 <파리 리뷰> 최신호와 거기 실린 단편과 인터뷰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새로운 글쓰기에 도전하는 문학 실험실'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명작들이 많이 실려 있을 것 같다.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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