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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아이즈 Little Eyes

[도서] 리틀 아이즈 Little Eyes

사만타 슈웨블린 저/엄지영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이 책은 스위치 사이트에서 출간 전 연재물로 1화를 읽자마자 뒷이야기가 궁금해져서, 꼭 읽고 싶었던 책이었어요. 그런데 2화부터는 갑자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나와서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된 소설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소설을 다 읽고 나니 1화의 그 주인공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가는 그 이후로 더는 언급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다른 주인공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꽉 찬 소설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이 소설엔 한 명의 주인공이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번갈아가며 등장합니다. 아, 굳이 주인공을 꼽자면 책 표지의 귀여운 인형인 '켄투키'가 될 수 있겠네요. 켄투키 없이는 서사가 진행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이 책의 원제도 'Kentukies' 였는데, 좀 더 귀여운(?) 맛을 위해 우리나라에선 '리틀 아이즈'로 번역되어 나온 것 같습니다.

 

사실 켄투키는 그냥 귀여운 인형이 아닙니다. 토끼 모양만 하고 있는 것도 아니구요. 켄투키는 카메라가 달려 있는 인형입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켄투키가 되는 사람)'과 '보여지는 사람(=켄투키의 주인)'이 있어야 완전한 기능을 하지요. 주인이 켄투키를 구입하면, 그 켄투키의 카메라를 통해 주인을 보며 실제로 켄투키를 조종하는 베일에 싸인 관찰자가 있어야 켄투키가 움직입니다. 켄투키를 구입한 사람과 켄투키가 될 권리를 구입한 사람을 매칭시켜주는 서버가 있어서, 매칭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켄투키가 움직이는 거지요. 이 매칭은 국적에 구애받지 않고 이루어지기에,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나라의 사람들과 매칭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경우 주인이 자신의 모국어로 켄투키에게 말을 걸면, 켄투키를 보는 사람의 화면에는 그 말이 즉각 번역이 되어 나오지요. 그렇지만 켄투키는 효과음 정도의 소리만 낼 뿐,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즉, 주인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누군지도 모르는, 일면식도 없고 지구 반대편에 살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관찰자 역시 누군지도 모르는 '주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설정을 기반으로, 세계 곳곳의 켄투키의 주인과 관찰자 간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식으로 펼쳐집니다.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관찰자가,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주인이 주인공이지요. 또 한 편은 켄투키의 주인과 관찰자가 랜덤 매칭이 된다는 것을 역이용해, 켄투키가 어떤 주인에게 연결되는지를 확인하고 그 주인의 특성을 서술해 '그 사람을 관찰하고 싶은 사람'에게 켄투키를 파는 업자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런 세계에서라면 있을 법한 비즈니스지요.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모든 에피소드가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점은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제일 처음에 언급한 '1화'의 주인공 소녀들처럼요. 그 소녀들은 켄투키의 익명성을 맹신한 나머지, 자신들이 괴롭혀 온 다른 여자아이의 사진과 주소, 이메일 등을 알려주면서 그 아이를 더 괴롭게 해 달라고 켄투키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위자 보드를 통해 켄투키는 '너희의 영상을 그 애의 이메일로 보내버리겠다'며 오히려 소녀들을 협박하지요. '주인'의 엄마가 똥을 누는 장면, 여동생이 자위하는 장면 등의 동영상도 갖고 있다면서요.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지만, 이 에피소드는 그냥 여기서 끝이 나 버립니다. 그리고 또 인상깊게 봤던 '켄투키끼리의 사랑' 에피소드도 있는데, 여기서 서로 사랑에 빠진 중국인 남성 관찰자와 대만인 여성 관찰자의 관계도 결국 찝찝하게 마무리되고 맙니다. 바닥에 그려진 알파벳 위를 왔다갔다하며 소통하던 이들은 서로 메일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며 마음을 키워가는데, 알고 보니 대만인 여성은 이혼을 준비하는 기혼자였어요. 그 남편이 이들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뒷 이야기는 스포가 될테니 생략해야겠지만) 위기를 맞는데, 그 결말이 제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그런가 하면 제가 원하는 결말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반전이 있어 인상적인 에피소드들도 있었습니다. 독일 한 소도시의 젊은 여성의 켄투키가 된 페루의 노년 여성도 있었구요. 페루의 할머니는 그 젊은 여성이 자신(토끼 모양의 켄투키)을 사랑해 주고 극진히 보살펴 주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자신도 그녀에게 애정을 느끼고 그녀를 지켜주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남자친구를 데려 오면서부터 뭔가 어긋나게 되지요.. 또 예술가 남자친구를 둔 어느 여성의 경우, 예술가들의 마을로 들어간 남자친구가 전시를 준비한다며 자신을 하루 종일 방치해 놓는 바람에 심심해서 켄투키를 구입하고, 역시 켄투키의 익명성에 기대어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그 켄투키에게 가슴도 보여주는 등 별 짓을 다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남자친구와 이별을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그의 전시를 보러 간 순간, 켄투키를 통해 녹화된 자신의 모습과, 그런 자신을 관찰하는 관찰자의 모습이 녹화된 영상을 보며 남자친구가 사실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남자친구와 다른 사람인) 관찰자의 정체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되지요.

 

사실 처음 이 설정을 보고, 몇몇 에피소드까지 읽었을 땐 '저런 걸 왜 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 사생활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보여줄 생각은 전혀 없거든요. 그렇다고 남의 사생활을 넋 놓고 관찰할 만큼 한가한 사람도 아니구요. 그럴 시간에 책을 읽거나, 차라리 잠이나 푹 잤으면.. 하는 게 요즘의 심정이라서요. 그런데 소설을 읽어갈수록 묘하게 켄투키 분양을 영업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켄투키가 될래, 주인이 될래?' 하는 질문이 던져졌을 땐 진지하게 고민도 해 봤구요. 저 같은 독자를 위해서인지, 작가는 중간쯤 켄투키의 선한 영향력도 묘사해 두었어요. 심장 발작을 일으킨 노부인의 켄투키가 신고를 해 주어 살았다거나 하는.. 그렇지만 결국 작가는 켄투키의 부정적인 면을 더 부각시키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심장발작 예시의 결말조차 '그 노부인이 감사해서 자신의 관찰자에게 사례금을 전달하자마자 켄투키 연결이 끊어져, 결국 그녀는 2차 심장발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였거든요. 그리고 켄투키를 통해 이어진 주인과 관찰자들 간에 정상적으로 훈훈하게 끝나는 관계가 없었어요. 마지막에 정체가 드러나는 관찰자 한 사람은 동성 소아성애자로 의심되는 사람이기까지 해서,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역시 켄투키가 현실에 존재한다고 해도 저는 사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생활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와 동시에 '남의 사생활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전자의 경우 외로운 사람일 가능성이 높겠지요.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주변에 없는 사람 말이죠. 후자의 경우에도 외로운 사람이 될 수 있겠지만, 사실 외로운 사람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사생활을 궁금해하긴 할 것 같네요. 특히 관찰자의 경우 원한다면 자신의 신분은 전혀 노출하지 않고 켄투키 주인의 모든 것을 알아갈 수 있으니까요. '익명성' 뒤에 숨을 수 있기에 용기가 나겠죠. '온라인'과 '비대면'으로 점철된 요즘 더 생각해 볼 만한 화두인 것 같습니다.

 

현실감 있는 설정과 흡인력 있는 필력 덕에,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푹 빠져서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읽었는데, 책장을 덮고 나니 여운이 남네요. 이런 소설을 쓰기 때문에 사만타 슈웨블린 작가가 '아르헨티나(또는 남미) 문학의 센세이션'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작가의 전작이자 넷플릭스에도 올라와 있다는 <피버 드림>도 읽어보고 싶네요. 이렇게 독서 지평을 넓혀가는 거겠죠?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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