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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달리기

[도서] 이어달리기

조우리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이어달리기>라는 제목만 봤을 땐, 달리기 이야기를 소재로 한 소설인가? 싶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 '혈연과 세대를 초월한 여성들의 다정하고 느슨한 공동체'라는 소개 문구만큼 이 책을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새삼 띠지의 문구에 감탄했다.

 

이 소설은 '성희 이모'를 중심축으로, 성희 이모와 인연이 닿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쌓여 가는 구조이다. 그래서 연작소설인 것이다. 성희는 일찍이 부동산 쪽에도 일가견이 있어 '돈은 많지만 시간은 없는' 부류이고, 여성만을 만나며 결혼은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만나는 여성들, 또는 주변 친구들의 조카를 자신의 조카처럼 생각하며 '이모'가 되기를 자처한다.

 

성희는 이들을 말로만 조카처럼 생각하고, 또는 기념일이나 챙겨주고 하는 수준이 아니다. 이들의 미래까지 아예 책임지겠다는 일념으로, 그리고 이들이 친조카라도 된다는 듯이, 유언장까지 고쳐 가며 유산을 나눠 준다. 그렇지만 유산을 그냥 막 퍼주듯 주는 게 아니고, 각자에게 어울리는 '미션'을 주어 미션의 성공 보상으로 유산을 준다. 어렸을 때 어린이의 모습으로 성희 이모를 만났던 이들은 성희 이모보다 나이가 많아질 무렵 그 유산을 받고, 각자의 꿈을 이룬다.

 

책을 읽다 보니, 성희 이모는 각 조카들의 성향을 매우 세심하게 파악해서 각자에게 어울리는 미션과 유산을 준 것 같다. 미션 자체도 각자의 성격과 상황에 맞게 주어지며, 편지로 오는 성희의 미션에 답장이 없으면 이메일을 하기도 하고, 자신감이 부족한 조카에게는 은근슬쩍 자신감을 올려주면서까지 조카들을 끝까지 끌고 간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 책에선 남자가 나오지 않는다. 중간중간 성별이 불분명한 사람이 나오긴 하는데, 엑스트라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조금이라도 비중 있는 역할을 하는 인물들은 모두 여성이다. 그래서 '여성들의 공동체'라는 말이 띠지에 들어가 있는 거겠지.

 

일부러 그러려고 한 건 아니지만, 최근에 여성 서사의 소설들을 참 많이 읽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이 소설을 펼쳤을 때 '또 여성 서사야?' 라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책에선 성별은 중요하지 않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성희 언니는 그 옛날 주디에기 힘이 되어 주던 '키다리 아저씨' 같은 역할인 것이고, 여러 조카들이 '주디'인 거다. 키다리 아저씨가 꼭 아저씨일 필요는 없는 거다. 마찬가지로 꼭 여자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책은, 어린이를 좋아하고 어린이의 가능성을 믿는 한 따뜻한 어른이, 이 어린이들을 끝까지 저버리거나 끈을 놓지 않고 세심하게, 또는 은밀하게 돌봐주는 내용인 것이다. 그 어린이, 또는 그 어른의 성별은 상관이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제목 <이어달리기>가 참 좋은 것 같다. 이만큼 연작 소설에 잘 어울리는 제목도 없겠다 싶기도 했고, 제목에 '여성 서사'임을 강조하는 내용이 들어가지 않은 게 좋았다. 맨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도 그랬다. 조우리 작가님은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쓰면서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218면)"고 했다. 어른과 어린이의 성별은 상관 없다.

 

이 책을 읽는 나도, 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가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어린이에게 좋은 어른이고 싶다. 아래의 문장을 항상 기억하면서.

 

왜 어떤 어른은 어린이를 만나면 꼭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을까. 지금 눈앞에 있는 어린이가 아니라 미래에 어른이 될 존재하고만 대화하겠다는 것처럼. 차라리 어젯밤에 꾼 꿈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왜 재미없는 어른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이어달리기, 85면

 

* 한겨레출판사 하니포터 2기 활동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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