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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삶이 될 때

[도서] 언어가 삶이 될 때

김미소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는 '설마'했다. 왠지 내 이야기랑 비슷한 이야기를 할 것 같은 제목이었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그렇게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책은 많이 없었기에. 그런데 책을 다 읽은 지금, 이 책은 '거의 내 이야기'라고 봐도 될 법한 책이 되었다.

 

나는 어릴때부터 외국어 배우기를 좋아했다. 대여섯살 때부터 내 꿈은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거였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무슨 책인가를 읽고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때부터 내 꿈은 통번역사였다. 그래서 고등학교도 그 쪽 계열로 갔었고, 그때만 해도 영어통역사만을 생각했었으나, 영어만 해서는 큰 비전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넓고,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정말 많으니.

그래서 나는 희소한 제2외국어를 전공언어로 선택했고, 지금 나는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그 제2외국어 동시통역사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 전에, 내 첫 외국어는 영어였다. 어릴 때부터 영어공부를 너무 좋아했었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그런 성향은 바뀐 적이 없었다. 대학생 때는 미리 준비해둔 어학 성적을 활용해서 미국 교환학생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랬기에 이 책 저자의 삶, 특히 미국에서 좌충우돌하며 영어를 습득하고, 성인이 되어 제2외국어를 배우는 것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고찰에 더욱 깊이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더 공감했거나, 더 반가웠거나, 더 생각해 보고 싶어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부분들은 아래와 같다.

언어를 배우는 데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그 언어와 함께 살아가는 경험이다. 사람은 지식이나 능력을 들고 다니는 컴퓨터가 아니고, 제2언어 역시 뇌 안에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능력이 아니다. 사람들은 언어를 배워서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사회와 교류하며 삶ㅇ르 꾸려간다. 이처럼 언어는 관계, 사회, 삶 속에 존재한다.

34쪽

성인이 되어 배우기 시작한 제2외국어를 동시통역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는 데 내가 들인 노력을 생각하면, 확실히 어렸을 때부터 배운 영어와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영어를 했을 땐 미국에 오래 살다온 교포인 것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지만, 그 제2외국어를 했을 땐 그런 말을 들어보진 못했다. 그렇지만, 중간에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배울 수는 있는 거다.

 

내가 말하고 싶은 이미지가 이미 내 머릿속에 있더라도, 어떤 언어로 풀어내고 싶은지에 따라 어느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 말해야 하는지가 달라진다. 언어가 강제하는 자질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언어에 따라 세상을 인식하는 법이 약간 달라질 수 있다.

65쪽

이 말에는 나도 공감한다. 나 역시 한국어를 쓰는 나 자신과 영어를 쓰는 나, 그리고 제2외국어를 쓰는 나 자신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기에. 그렇지만 '이중언어자는 각 언어의 문화에 맞는 행동양식을 따르게 되는 것(66쪽)' 이라는 말을 보니, 나도 성격이 바뀌었다기보단 그냥 그 언어의 문화를 따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에일리언(alien)

114쪽

내가 미국에서 듣고 처음엔 가장 이질적으로 다가왔던 단어.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alien이 꼭 외계인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걸. alien은 외국인을 뜻하기도 한다는 걸. 그렇지만 foreigner이 아닌, 그 단어를 볼 때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나를 외계인 취급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한 게 역시 나 뿐만은 아니었구나, 하며 공감했던 부분이었다.

 

영어는 우리를 어떤 문화에도 속하지 않는 공간으로 데려다 줄 수 있다. 영어는 우리의 손발을 묶어놓을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한 국가에 얽힌 문화나 관계에서 해방시켜주기도 한다.

171쪽

정말 공감했던 문장. 나 역시 영어나 전공 제2외국어를 쓰면서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꼈었는데, 그게 이런 이유에서였나 싶었다.

나는 영어를 직접 쓰려고 공부하는 걸까, 혹은 남을 줘서 다른 걸 얻으려고 공부하는 걸까? 스트레스가 심하다거나, 내 영어 공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면, 한 번쯤은 나를 위해 공부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걸 얻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건지 점검해 보는 것도 좋다.

221쪽

사실 나는 언제나 영어 공부가 즐거웠다. 고등학생 때는 지루한 수능 공부 중 영어를 도피처나 해방구 정도로 생각할 정도였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좋아했던 덕에, 고등학생 때도 그 이후에도 항상 영어는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성적이 잘 나왔다. 그렇지만 이제 아이 엄마가 되었기에, 내 아이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안다. 만약 아이가 영어 혹은 제2외국어 공부 때문에 힘들어한다면,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내가 정말 공감할 수 있었던 에피소드,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내게 필요했던 문장들이 가득한 에세이였다. 이번 한 번 읽고 그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두고두고 계속 꺼내볼 것 같은 에세이.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 한겨레출판사 하니포터 2기 활동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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