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모든 것은 영원했다

[도서] 모든 것은 영원했다

정지돈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라는 부제가 달린 알렉세이 유르착의 책 제목이다.
2005년 미국에서 출간된 후 학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후기 소비에트 시기 문화 연구의 붐을 일으켰다고 한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소비에트의 권위적 담론이 해체되고 새로운 융복합적 주체성이 탄생하는 모습을,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설명한 수작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은 유르착의 책으로부터 따온 것일까.
참고문헌에도 올려놓은 것을 보면 그렇게 보인다.

다만 방향은 정반대에 위치한다.
유르착이 붕괴되는 체제에 오히려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을 통해 체제와 삶 사이에 이미 존재했던 모순이 자연스럽게 전복되는 과정을 끄집어낸 것이라면, 이 책은 50년 전 이념의 틈바구니 속에서 방황하다 삶을 마감한 정웰링턴이라는 실존인물을 통해 '과연 영원한 신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며 선택적 갈등 자체를 해체할 것을 촉구한다.

'전투적 공산주의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주인공이 유토피아를 꿈꾸며 찾았던 체코도, 마지막 종착지라고 생각했을 북한도, 공산주의 체제의 중심국가로서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소련도 결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시공간일 뿐이었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어느 곳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한 채 영원의 틈새에 갇혀버린 윌리(정웰링턴)가 결국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최종의 선택지는 '자살'이었다.

'우리가 행동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과정이 교차하며 오가는 무수히 많은 순간에서 아주 가끔 의미가, 무언가 일치되고 연결되는 순간이 탄생하지만 그때가 지나면 그것을 말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그런 순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원히 남아서 존재하고 있다. 단지 망각할 뿐이다. (중략) 오랜 세월 묵혀뒀더 트라우마가 불현듯 현실을 찢고 나오는 마지막 순간에 복받쳐 오르는 충격과 감동, 회한, 그리고 구원. 내가 말했다. 아직도 그런 걸 믿어요?' (본문 중에서)

영원한 구원은 없다. 믿음이 믿음을 만들 뿐이다. 그 사실만이 영원한 명제일 것이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일 수 있도록 만드는 원천이다. 그걸 망각한 채 집착하다보면 어떻게 될까.

'깊이는 사람을 병들게 한다. 윌리는 헬레나를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병은 사람을 매혹한다는 사실도.' (본문 중에서)

결국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영원의 함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주체적 삶으로 회귀해야 한다. 내 삶의 주인인 나로 돌아와야 한다.

'지옥에선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생각을 연결할 수는 없어, 생각을 연결하는 것은 미래를 향한 행동이기 때문이야.' (본문 중에서)
'꼭두각시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꼭두각시가 되는 순간 너의 주인은 너에게 관심을 잃을 테니.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함몰된 이념은 분절을 초래하고 분절된 이상은 맹목적 순종으로 주체를 몰아넣는다. 생각을 하되 연결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잘못된 이념이 주체들에게 작동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영원'이라는 착각을 통해 주체를 마비시키는 힘이 된다. 역설적이게도 정웰링턴의 비극적인 삶은 '영원'이라는 착각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우리의 자각을 촉구하는 모멘텀인 것이다.

영원은 분명 없다. 주체적인 삶이 있을 뿐이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