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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 (22:00~24:00)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12일차

 

 

 

 


프랑스의 작가 겸 편집자인 마네스 스페르베르는

끔찍한 범죄를 당했음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이것이 문제다. 몇 세대가 지나면 과거의 일은 잊히게 마련 아니던가.
우리가 고구려 신라 백제 시대에 외세와 전쟁을 벌이던 일을 보자.
그 시대의 전쟁과 만행에 대해 우리는 지금 그다지 분노하지 않는다.
너무 오래된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전범들이 살아 있는 현 시대적 핍박에 대해서,

용서라느니 잊는다는 말이 적용되어야 할까?

또한 마네스는 '집단적 죄의식'이라는 개념은 부정하면서

민족적 혹은 국가적 차원의 책임감은 성립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이 모인 것이 집단이요 민족이요 국가 아닌가?
혹시 마네스는 집단을 단지 소규모 모임 정도로만 여긴 것인가?

 

 

마네스의 뒤를 이어 시몬 비젠탈의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쓴

캐나다의 언론학자 앙드레 스타인은
유아살인이나 고문, 강간 등의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용서하면서 그 범죄의 원인을
이데올로기나 선동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한다.

 

 

미국인 사회학자 네케이마 테크는 시몬의 질문에 대해서 완고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나는 그의 입장에 동조한다.
어떤 범죄와 그 행위를 한 자에 대하여 우리가 용서를 베푼다면
범죄자는 다시 그 행위를 반복할 가능성이 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 새벽에 교회에 가 남의 밭에서 상추를 딴 어제의 죄를 고해성사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또다시 남의 밭에서 고추를 따가는 것과 다름이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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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시몬 비젠탈 저/박중서 역
뜨인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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