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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여자

[도서] 운동하는 여자

양민영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매년 학교에서 열린 체력장 시간이 고역이었던 내가 운동에 관심이 생긴 건 다이어트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다이어트 카페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수많은 정보들이 있었고, 충격적인 이야기도 쏟아져 나왔다. 가혹한 식단으로 식이 장애를 겪는 사람, 뚱뚱한 몸매를 면전에서 저격하는 친구와의 에피소드, 그렇게 원하던 마른 몸을 얻었지만 볼륨을 잃어버려 가슴 수술을 고민한다는 글이 있었다. 이후, 두 번째로 한 일은 브라탑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운동을 하다 보면 먼저 가슴 지방이 빠지고, 처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꼭 브라탑을 입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살이 빠지면 당연히 지방이 뭉쳐 있는 가슴이 빠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여자의 멋진 몸매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빛나는 바디 프로필의 이미지는 운동을 하는 여성들도 대상화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근력운동을 하면서도 여자들의 근육은 ‘남자같이’ 울룩불룩하지 않아야 한다. 볼륨과 근육은 특정한 부위에 있어야 하며, 한껏 섹시한 모습을 자랑해야 한다. 이상적인 몸은 한결같았다. 건강과 체력, 혹은 운동에 대한 순수한 열망보다는 섹슈얼한 몸의 이미지가 전면에 드러났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생각하게 된다. '운동하는 여자'들의 모습은 이런 것이다. 날씬하고 매끈하며 섹시한 건강미의 콜라병 같은 실루엣. 이러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조금은 다른 모습의 건강미를 발산하는 여자들이 있다. 거칠고 힘이 넘치며 강한 투지를 보이는, 우리의 인식 속에서 마치 '여성스럽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모습들. 그러나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일 듯한 모습들.
 
<운동하는 여자>는 오랫동안 남성적인 행위로 규정되었던 '운동'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찾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다. ‘체육관에서 만난 페미니즘’이라는 부제가 적혀 있지만, 총체적으로 ‘대상화된 여성상’에 대한 고민과 투쟁의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가 갖가지 운동을 하면서 느꼈던 경험을 토대로 갖가지 편견들과 이슈들을 담았다. 그는 본격적으로 강도 높은 운동을 시작하면서 '운동하는 여자'들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번 체감하곤 했다. 근육과 힘이 늘어나면 여성적이지 않아 여성의 범주 안에 들 수 없고, 훌륭한 능력을 보여도 '여자치곤 - '이라는 말로 평가 절하되는 돌연변이 같은 존재가 바로 '운동하는 여자'들이었다. 저자는 주짓수를 배우면서 여자들이 싸움에 무지한 이유에 의문을 품고, 헬스장에까지 메이크업을 하는 여자들을 보며 현실을 인지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몸을 긍정하는 것과 예쁘게 치장함으로써 당당해지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다(66쪽)" 그리고 브라를 벗어던지고 힘차게 달린다. 자유로움을 향하여!
 
개인적인 경험은 책의 중반부에 이르러 사회적 문제로 확대된다. 출산 후 경력단절로 고생했던 '세리나 윌리엄스', 여자 선수와 남자 선수의 '샐러리 캡(팀 연봉 총액의 상한선을 정해두는 제도)'의 문제를 제기한 '김연경' 선수, 분노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맨스플레인의 대상이 되었던 '론다 로우지', 체육계의 성폭력을 고백한 '심석희' 선수 등,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스타들에게도 적용되는 여성차별 문제에 대하여 언급한다. 또한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의 광고와, 반대로 외모지상주의와 고정관념을 더욱더 강화시키는 넷생 (이를테면 인스타그램)의 수많은 이미지들에 대해서도 문제 어린 시선을 던진다.
 
"넷생을 점유한 트렌드는 다시 현생에 영향을 끼친다. 넷생과 현생이 영향을 주고받는 양상을 살펴보면 체육관의 욕망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알 수 있다. (…) 이 방면에 크게 관심이 없던 여성들까지 자신의 몸에 의문을 갖는다. 내 몸은 매력적인가? 얼마나 섹시한가? 충분히 말랐는가? 여기까지 도달하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은 순간이다. (…) 물론 인터넷 자아를 선택하고 연출하는 것은 개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노출과 그로 인한 섹스어필이 쿨한 것으로 통하고 그 반대는 따분하고 경직된 것으로 여기는 흐름 속에서 그것이 취향이고 선택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188쪽)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운동에 대한 즐거움과 투지를 얻길 바란다고 썼다. 남이 만든, 남이 투영한 모습이 아닌 진정한 '나'를 바라보고 자신을 긍정하기를 바란다고. 오랫동안 다이어트를 했고 체중계의 숫자와 칼로리의 압박을 이기지 못했던 나는, 요즘 내가 원하는 것이 진짜로 무언지 계속 갈팡질팡하며 고민하는 중이다. 빼빼 마르거나 섹시한 몸이 아니라, 오로지 건강과 체력을 위하여 몸을 움직이는 것. 어쩌면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과 비슷하지만 다른, 진정한 행복을 찾아나가는 것이 바로 이쪽이 아닐까.

 
 
 
 
● 17쪽,
여성은 운동을 배우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법까지 함께 익힌다. 예를 들면 내가 처음 역도를 배울 때 가장 어려웠던 동작이, 양 무릎의 방향이 바깥을 향하도록 벌리는 것이었다. 평영을 배울 때는 바로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같은 여성이어야 마음이 놓였다. 나중에 함께 운동하는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왜 아니겠는가? 여성들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다리를 오므리라고 교육받는데.

● 35쪽,
하지만 문제의 ‘남자 같은 여성’은 진짜 남성이 아니다. 그래서 남성들의 비교 대상에나 머무른다. 이를테면 ‘여자도 이거보다 더 들어요’, ‘여자보다 기록이 안 좋군요’ 하는 말이 대수롭지 않게 오고 간다. 이쯤에서 궁금한 것은, 운동을 하는 남성들도 이토록 다양한 평가와 비교를 당하는가 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 운동은 남성적인 행위로 규정돼 왔다. 남성이 운동하는 것은 남성성을 추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환영받는다. 그렇다면 운동하는 여성에게 가하는 평가나 비교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운동하는 여성을 편견에 따라서 대상화하기 때문이거나, 또는 이들을 남성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한 불청객으로 간주하기 때문이 아닌가?

● 83쪽,
말하자면 우리는 단 한 번도 도와달라고 크게 소리치는 연습을 해본 적이 없다. 주먹을 휘두르거나 목을 조르는 남자의 팔을 어떻게 부러뜨리는지 배우지 못했고 가해자의 손에 들린 칼을 보고 얼어붙지 않는 법도 배우지 못했다.
요컨대 여성은 싸움을 모르고 싸우는 방법을 모른다. 그것이 여성성의 영역이 아니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싸움은 너무 과격하다는 편견 때문에, 다칠지도 모른다는 얄팍한 배려 덕분에, 싸움을 모르는 존재로 길들여진 것이다. 그 결과 일부 여성들은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말은 마치 사칙연산을 모르지만 함수를 풀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폭력을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것인가?

● 142쪽,
덧붙여서 성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우리 사회의 폭력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최초로 이 사건을 전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심 선수가 침묵해야 했던 4년의 세월과 그 지난한 고통을 헤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가족에게도 알리지 못하며 침묵했던 시간은 나에게까지 아프게 와닿았다.
심 선수는 그 극심한 고통에 맞서서 세계 정상이라는 성적을 냈고 그런 다음에야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신뢰할 만한 피해자가 되기 위해서, 이른바 꽃뱀을 골라내는 여론재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자격이 필요하다는 것을.

● 185쪽,
우선 근육은 필수지만 너무 크거나, ‘예쁘지 않게’ 발달해서는 안 된다. 전반적으로 마른 가운데 근육질인, 전문 댄서 같은 실루엣을 갖춰야 한다. 여기에 복근과 애플힙이 반드시 추가돼야 하며 몸이 완성될 무렵에 인공 태닝 등으로 피부색을 어둡게 해서 더욱 슬림하게 보이게끔 효과를 준다. 화보의 콘셉트는 시선을 끌면서도 너무 흔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콘셉트를 선택하든 노출을 빼놓을 수 없다. 어렵게 만든 몸을 인정받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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