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물질의 풍요로움을 넘어선 물건들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당장 우리집만 둘러봐도, 미니멀리즘과는 거리가 먼 맥시멀리즘에 가까운 삶을 추구하는 듯 보인다. (사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데 현실은 그것에서 점점 멀어져만 가고있다.)
그러나 우리는(일반인/대중) 이 많은 물건들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대표적인 77가지의 물건들을 자세히 살펴보다보니 내 주변에 널려있는 물건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하루 아침에 뚝딱 생겨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각기 독립적이지도 않다. 경제, 사회, 정치, 문화적 바탕이 연결되어 있어 인류의 역사 속에서 결코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이다.
?? 이 책에서는 물건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재미있고도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총 7가지 주제(일상/부엌/취향/혁명/일터/여행지/이야기)로 나뉜 77가지의 물건중에서 나의 흥미를 사로잡았던 몇 가지의 물건이야기를 공유해보자면..
??경구 피임약
약을 잘 못 삼키는 데다 ‘경구 피임약 부작용’에 대한 공포심이 있어서 한 번도 사용해 본적이 없는 약중 하나이지만 그 약의 개발과 임상실험과정은 나를 구글링하게 만들만큼 자극적이었다.
1956년 남미 푸에르토리코에서 폭발하는 인구수를 막을 방편으로 피임약 임상시험을 허락받게 된다. 하지만 동의를 받지 않은 정신 병동의 환자들을 시험에 투입하기도 하고, 시험이 아닌 치료라 속이고 투약을 하기도 했다. 결국 수건의 사망사고와 부작용들은 무시된 채, 피임약은 시판에 성공한다. 대부분의 임상시험은 가난한 여성들과 개발도상국의 여성들에게 진행되었다. 그들은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지도 못한 채 실험용 기니피그 역할을 한 것이다.
시판 초기부터 전 세계 3억명이 넘는 여성이 복용할 정도로 인기였는데 현재까지 남성용 피임약은 제대로 출시된 게 없다는 사실.
??젓가락
여전히 서양인들에게 젓가락은 신기하다 못해 신비스런 물품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1842년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중국 만물전’이 열리면서 미국 상인 네이선 던에 의해 중국 수집품이 소개되었다. 프랑스 국왕 루이 필리프 1세가 던의 소장품 전부를 사겠다고 제안한 것을 보면 중국의 폐쇄성이 서양인들의 호기심을 극도로 올려놓았음을 알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나무젓가락과 달리 한국식 쇠젓가락이 좀더 견고하고 위생적이며 더욱 정교한 스킬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아는 서양사람들은 몇명이나 될지 궁금해진다.
??페니실린
역사상 최초의 항생제이면서 20세기 중반에 의학적 혁명을 일으킨 페니실린. 사실 페니실린의 발견은 우연에 가까웠다. 영국의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포도상구균을 배양해놓고는 깜빡 잊어버린 채 휴가를 다녀왔다가 곰팡이로 변해버린 것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주변의 박테리아를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무튼 이 페니실린은 전쟁터에서 부상환자들을 치료하며 크게 활약을 했으며, 매독과 같은 성병에도 엄청난 효능을 보였다. 하지만 이 약의 임상시험 또한 북아프리카의 여러 식민국가에서 이루어졌다는 가슴아픈 과거를 품고 있다. 오늘날 세계 보건기구가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한 이 페니실린!! 하지만 우리집 가장은 이 페니실린 알러지가 있어서 약을 처방 받거나 주사를 맞기전에 성분 확인을 꼭 해야한다. 아주 많은 곳에서 이 페니실린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역사의 한복판에 서있다. 수 많은 물건들과 함께.
그 물건들은 우리 곁에 머물렀다가 떠나기도 하며 변화하기도 한다. 사소한 사물도 소중한 역사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나면 우리의 삶 자체도 더욱 쓸모있게 느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