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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아래

[도서] 수면 아래

이주란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북블로그 #수면아래 #이주란 #장편소설 #문학동네 #깊은상실 #헤어짐 #hyemhyem

 

#책 [수면 아래]
 

 그런 하루가 있다.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적인 날인데, 큰 사건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날인데, 이 장면을 예지몽처럼 꿈속에서 본 듯한 하루. 정확히 언제 이 꿈을 꾸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 속 남아있는 장면이 선명해 2~3초 정도 놀라게 되는 일상.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잠깐잠깐 집중할 뿐, 금방 사라지고 만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이런 현상이 좋은 것인지 아닌 것인지 명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흘러가는 지금 이 일상이 전과 다르지 않고, 개꿈이라고 치부해 사라지게 만든다. 며칠 후, 또 같은 일을 경험한다. '이 장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꿈에서 봤나...?' 하면서 꿈속 어딘가에서 미리 경험한 듯한 일상의 한 장면. 얼마 되지 않아 또 이러니 뭔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는 없는데... 미심쩍어하면서 숨은 의미라고 있을까 지난번 하루도 떠올리며 골똘히 분석해본다. 그러나, 조그마한 의미 말곤 딱히 떠오르지도 않고 금방 다른 하루에 시선을 돌리게 된다. 그렇게 또 사라지게 만들고 또 반복되겠지.

 

 위의 문장은 책 <수면 아래>를 읽고 나서 들었던 나의 감상이다. 잠도 똑같은 잠이 아니라 깊은 잠, 얕은 잠 등등이 있는 것처럼, 이 책은 깊은 잠 속 아래에 있는 듯한 기분이다. 편안하고 깊고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느낌만 강하게 남아있는 꿈. 책 표지 뒤에 박연준 시인의 감상평이 있는데, 그 글을 읽고 공감했다. 어느 극적인 장면, 극적인 말 없이도 충분히 묻어 나오는 저자의 글과 각각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이 독자의 피부에 부드럽게 닿아 감정 이입하게 만든다. 자극적인 감정이 아니게. 이 점이 나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각각 등장인물들의 수면 가운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나오진 않지만, 유추해가면서 또는 자연스럽게 고백하는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겪었을 깊은 상실을 그리고 애틋함, 뭔지 뭐를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서로 시시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일상적인 하루를 보내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마치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존재해 일상을 보낼 것이라 얘기해주는 것 같아, 마음 한쪽에 온기가 남는다. 마치 수면 아래 꾼 깊은 잠이 남긴 온기처럼.

 

 

#기억에 남는 문장

 

 사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냥 반복이라고 한 번만 말하기엔 너무 약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성냥으로 했지만 너무 쉬워서 이쑤시개로 바꿨는데 어때 보이나요. 어려워 보이나요.

 

 어려워 보여요.

 

 뭐랄까, 너무 쉬워서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언젠가 성냥이 모자랄 때까지 하고 나니깐 기분이 정말 이상했어요. 요즘 말로 하면 '현타'가 왔달까요.

 

 이쑤시개는 좀 낫나요?

 

 보세요. 이쑤시개는 좀 어려울 줄 알았는데 막상 이것도 잘됩니다. 매끈한 원형인데도 말이에요. 나는 이게 좀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단은 계속합니다. 이거라도 해야지 어쩌겠어요.

- 16p

 

 김치 한 통을 만들기 위한 일들. 이렇게 하여 밥을 먹고 김치를 먹고사는 것. 하루가 다 간 느낌이었는데 엄마가 먼저 하루가 다 갔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느꼈지만 괜히 아직 여섯 시밖에 안 되었는데?라고 말해보았고 엄마는 벽시계를 올려다보며 다 간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도 거의 다 간 거나 다름없고 덧붙였다. 그렇게 지나지 않았으나 다 지나가버린 거라고 생각하는 하루하루를 살면 조금 가벼워지는 것인가 생각하며 초록색 둥근 컵에 믹스커피 봉지를 뜯어 쏟았다.

- 42p

 


우경과 함께 있을 때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편안하고 편안한. 아주 오랫동안 그래 왔다.

- 56p

 

다만 그립다는 것인가, 그리운 것은 어쩌면 고마운 것과 닮아 있구나 생각했다.

- 66p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왜인지 일을 열심히 하게 됐습니다. 공연이 없을 때엔 닥치는 대로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모았어요. 뭔가 해주지 못한 게 너무 많아서 그런 미안한 마음을 씻고 싶었는데, 말하자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일을 더 열심히 하면 좋은 사람이 될 줄 알았어요.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한집에 살면서 아버지랑 마주치기도 어려울 정도로 집에선 잠만 자고 또 일을 하러 나가고요. 술도 끊고 자연스럽게 친구도 안 만나고 정말 일만 열심히 했고... 일을 열심히 했다는 말을 몇 번을 더 반복해도 모자랄 만큼 최선을 다했어요. 더 많은 시간을 일하면 평범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몇 년을 그렇게 달려오다가 어느 날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는데 아니, 여기가 어디지? 집까지 가는 길이 너무 먼 거예요. 그날따라 그 길이 왜 그렇게 길었는지 노래를 부르며 아무리 걸어도 도대체 집이 가까워지질 않더군요. 집이, 너무... 친구들은 모두 자리를 잡은 지 오래였고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저를 데리러 나와달라고 전화를 걸면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 101p

 

왜인지 자주 보고 싶은 해인 씨.

- 106p

 


자기 걱정을 하는 건 나쁜 걸까요.

 

아니요.

 

나쁘지 않나요.

 

나쁘지 않은데요.

 

나쁜 것 같아요.

 

진짜 안 나쁜데요.

- 113p

 

그 얘길 전해 들으면서 어쩐지 시시하다 생각했고 참 슬폈습니다. 저는 시시한 것들을 사랑하고 시시한 것은 대체로 슬프니까요.

- 124p

 

열이 나지 않더라도 마음이 힘들 때 해열제를 먹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말은 유진 씨에게 들었다.

- 1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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