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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도서]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김제동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간만에 서울 한복판에 섰다. 주말답게 사람이 넘쳤는데,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어르신의 비율이 높았다. 그들은 잠시 후 품에 고이 접어 두었던 태극기를 꺼내 들었다. 엠프가 등장했고, 귀를 찢어놓을 듯한 음성에 잠시 아찔함을 느꼈다. 탄핵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한 인물을 다시 옹립해야만 대한민국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그 목소리는 주장했다.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아무도 그들을 제지 않는 상황을 바라보며 나는 민주주의의 범주가 어디까지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분명 그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나에게 1980년대는 모든 게 풍족했던 시절로 기억되고 있다. 너무 어려서, 역사를 배우지 않아서라는 말로 당시의 기억을 옹호하고픈 마음은 없지만, 당시 나는 실제로 그리 느꼈다. 대통령이 독재자인 줄을 몰랐다. 너무 오래 한 사람의 얼굴을 텔레비전에서 보아왔기에 으레 그가 대통령이어야만 한다고 믿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선거로 대통령이 바뀐다는 소릴 들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줄로만 알았다. 무지가 빚어낸 일종의 블랙 코미디였다. 결국에 모든 것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말이 맞는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제까지는 그래왔지 싶다. 더디지만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고, 왜곡이 존재했더라면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계속돼 왔다. 모든 행동은 우리의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정신을 실천하기 위함과 일맥상통했다. 존재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던 헌법에 부합하는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은 실로 눈물겨웠다.

몇 해 전부터 개헌 논의가 진행 중이다. 모두에게 가장 주목 받는 부분은 대통령의 임기 혹은 대통령제/의원내각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어떠한 통치 체제를 택하는가의 문제는 물론 중요하다. 한 사람에게 과도한 권력이 주어짐에 따라 겪었던 부작용이 많았던 우리로서는 이를 재고할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섣불리 의원내각제를 택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대통령 축출에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신질서의 도입을 놓고 본다면 실패에 가까웠던 지난 혁명의 기억으로부터 아직 자유롭지 못한 우리니 말이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없다. 그리고 인간이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제도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제동이 바라본 헌법은 아름다웠다. 일단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상이 충분히 담겼다는 점에서 그랬다. 문장이 길면 잘 안 읽힌다. 주어와 서술어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이상해지기도 하는지라, 글을 잘 쓰려면 문장은 무조건 짧게 구사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어왔다. 우리의 헌법은 때때로 숨이 넘어갈 것처럼 긴 문장을 구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운율이 느껴진다. 랩이라고 생각하고 경쾌하게 헌법을 읽는다면 불경하다는 지탄을 받겠지만, 아예 외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알아야 힘인 것들이 제법 존재하는데 헌법도 그 중 하나다. 김제동은 헌법을 제 어린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부모, 아니, 그보다도 더 윗세대가 규정한 아름다운 규칙처럼 묘사한다. 헌법은 제 국민이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를 세세히 규정하였는데, 아무래도 그걸로는 부족했다 싶었던지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며 아예 못을 박기까지 했다. 헌법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 또한 지녔다. 국가는 헌법을 준수해서 우리가 지닌 이와 같은 권리를 필히 보장해야만 옳다. 안타깝게도 국민이 지녀야 할 권력을 손에 쥔(그들이 지녀야 했던 건 권력이 아닌 권위였건만) 지도자들은 제 입맛에 맞추어 헌법을 짓밟았다. 총칼로 사람들을 위협하고 고문을 가하며 인간다움을 앗아가는 형태의 국가 폭력이 얼마나 많았는지, 의문사로 생을 마감한 사람, 부당하게 감옥에 갇히고 자유를 빼앗긴 사람 들이 넘쳤다. 나아졌다고 하는 오늘날에도 형태는 달라졌으나 행복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꽤 존재한다. 경쟁이 없으면 도태된다고 혹자는 주장한다. 아무리 그 말이 옳다 하여도 우리말을 구사하기도 전부터 영어 유치원을 다니며 외국어에 능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어딘지 모르게 서글프다. 국가가 제공하는 기본 교육을 성실히 이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녔지만 등록금을 부담할 여력이 없어 이후 교육을 포기한다거나 원하는 직장에의 취업을 접어야 하는 이들마저도 국가는 돌보아야만 하거늘, 그게 잘 안 이루어지고 있다. 헌법이 문제가 많다고 주장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그 정신을 실현해보고자 노력했는지를 묻는 게 우선 같은데, 국가와 국민 모두 헌법을 알려하지 않았다. 하나의 허울로서, 지켜지지 아니 할 선언으로서만 존재하는 헌법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헌법을 가지고도 독후감을 쓸 수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세상은 넓고 모르는 것 또한 넘친다지만 헌법을 몰랐다는 건 많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헌법이 말하고 있는 국민의 일할 권리를 실천 중인 지금의 내 모습이 그토록 비루하게 느껴졌었나 보다. 연이은 취업 실패가 안겨다준 불안이 나 혼자만의 것이라 오해했던 것도 헌법이 말한 국가의 의무를 알지 못한 탓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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