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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중독 사회

[도서] 기술 중독 사회

켄타로 토야마 저/전성민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요즘 대학생들은 노트를 사용 않는다고 한다. 나 때만 해도 직접 연필이나 펜을 이용해 수업 내용을 필기했는데, 지금은 개개인이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지라 그럴 필요가 없단다. 일찌감치부터 컴퓨터를 사용해온 세대임으로 그 편이 익숙할 것이다. 게다가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은 얼마나 멋진지 모른다. 디지털 치매라 하여 과도한 전자기기의 사용이 오히려 두뇌에는 해롭다는 연구결과도 있긴 하지만, 우리의 일상을 뒤흔든 문물을 애써 외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이 과연 우리를 구원할 것인가? 과거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많은 문명의 이기가 우리의 일상에 도입됐다. 분명 예전에 비하면 우리는 기술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그로 인해 이룬 생산성 향상도 무시못한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예측한 것처럼 미래가 마냥 핑크빛인 건 아니다. 수많은 낙관에도 불구하고 기술 자체는 우리가 기대하는 효과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개발도상국의 빈곤 계층을 돕기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 활동에 참여해온 저자가 제시한 사례는 기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오래 전 들었던, 기술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라는 말이 살짝 떠올랐다. 사실 이와 같은 관점 역시도 위험하기는 하다. 원자 폭탄이나 유전자 변형 기술 등을 단지 기술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존재하겠는가. 아니, 이는 너무 극단에 속할 수도 있으므로 보다 보편적인 문제로 되돌아가보도록 하자.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는 컴퓨터 사용이 드물다.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교사의 확보조차도 요원한 이 나라들에 컴퓨터를 도입한다면 한껏 나은 교육이 이루어지리라는 점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바다. 하지만 저자는 컴퓨터의 도입이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못했음을 말했다. 아이들의 호기심은 컴퓨터를 오로지 학습에만 사용하는 걸 용납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자율권을 부여하자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를 공부와는 상관없는 동영상을 시청한다거나 게임을 즐기는 등에 활용했다. 의도한 대로 컴퓨터를 쓴 아이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이들 국가는 컴퓨터만 부족한 게 아니었다. 전력 상황도 아주 안 좋아서 수시로 전기가 끊겼다. 그럴 경우 컴퓨터는 무용지물로 변신했다. 발생한 에러를 손보기 위해 교사는 수시로 수업을 멈추어야만 했고, 그 때마다 교실은 산만한 분위기로 뒤덮였다. 차라리 칠판에 백묵으로 수업을 하는 편이 낫다고, 저자는 감히 판단했다. 내가 보아도 꼭 컴퓨터에 의존해 수업을 진행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기술이라 하는 것은 어느 하나만 발달한다고 하여 도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나를 위해서는 여러 단계의 뒷받침이 따라야 했는데, 어느 하나가 부족한 국가의 경우 안타깝게도 결핍은 모든 영역에 존재했다.

이는 기술 아닌 사람에 적용해도 마찬가지였다. 기술을 이해하는 능력은 글자를 읽고 쓸 줄 모르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 좀 더 뛰어났다. 기본을 등한시 한 상태에서 응용을 요구하는 건 어리석은 태도인 셈이다. 고로 오로지 기술만으로 전 세계의 빈곤을 퇴치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생각을 다시 해야 한다. 기술 습득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본 교육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들의 노력은 오히려 또 다른 불평등을 가져다줄 따름이다. 이는 오래 전 접한 매슬로우의 이론을 연상시켰다.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가 해결되지 않은 이에게 자아실현을 언급하는 건 무모한 태도다. 물론 극소수의 사람은 매슬로우의 이론을 비웃듯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교육의 기회를 부여잡기도 하였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길에서 노숙을 하고, 하루에 한 끼조차도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육을 위해 매일 수 킬로미터를 걷는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먹고 사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육을 실시한다면 기술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미래를 꿈 꿀 수 있도록 돕는 인문학을 택하는 것이 옳다. 더딘 것 같지만 이미 사회는 변화를 경험 중이다. 인도가, 파키스탄이, 몇몇 아프리카 국가에서, 다시는 모국을 찾지 않겠다며 직장을 따라 미국 등지로 떠났던 이들이 선한 뜻을 실천해 보겠다며 되돌아오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들은 높은 임금과 직장이 제공하는 다양한 복지 혜택을 포기했다. 오로지 자신과 제 가족에게만 집중했던 지난날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성장을 묵묵히 지켜봐준, 그러나 여전히 열악함과 싸우고 있는 그 곳에 새로운 싹을 틔워보겠다는 꿈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음에 이와 같은 변화를 일으킨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적어도 기술은 아닐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앞선 많은 욕구들이 해소됐을 때 모두가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하진 않는다. 일부는 보다 높은 자리, 보다 거대한 부를 좇는다. 기술 아닌 사람, 기술보다 더 높은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교육. 그와 같은 시선이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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