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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갑니다, 편의점

[도서] 매일 갑니다, 편의점

봉달호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편의점 아저씨의 ‘이토록‘ 성실한 기록.

달리 수식어를 붙일 길이 없었다. 경험해 본 이들은 알겠지만, 편의점 운영은 나를 갉아먹는 짓(!)이다. 오래 전 나의 부모가 마지막으로 택했던 업종이 바로 편의점 운영이었는데, 막판에는 온 가족이 좁은 매장 운영을 위해 교대 근무를 서며 서로의 얼굴도 볼 새 없이 바빴다. 아르바이트 생을 들이지 않았으므로 매출이 늘어났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만큼 많은 걸 잃었다. 그게 벌써 15년 가량 전의 일이다. 너무 지친 탓인지, 이후 부모는 어떠한 생산적인 일도 않고 계시다. 아침에 일어나 텔레비전을 틀고는 식사를 위해 식탁에 앉는 시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순간을 온갖 드라마, 오락 프로그램 섭렵에 투자하고 계시다. 과연 글을 쓸 시간이 있긴 했을까. 손님은 언제 왔다 언제 사라진다는 예측 없이 등장하고 떠난다. 무언가에 집중하기란 쉽지 않을 조건인데도 책을 냈다. 경이로웠다.

편의점마다 조건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저자의 매장은 유명 프랜차이즈 가맹점으로, 주말과 야간에는 운영 않는다 했다. 각종 회사가 입점한 건물에 위치했으므로 어느 정도 고정 손님이 존재할 것이었다. 대신, 점포 임대에 들여야 하는 비용이 컸을 거다. 시간 개념은커녕 요일 개념조차도 갖기 힘들 정도로 24시간, 아예 365일을 일해야 하는 편의점주들에 비한다면 낫다고 말하기도 모호했다. 쉬는 만큼 매출은 줄어드는 게 눈에 보였다. 쉬는날 손님들은 인근의 경쟁 점포를 방문할 것이고, 예민하다면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상당할 것이다. 어차피 감당해야만 한다면 즐기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는 편이 나으리라. 앞서 개인 편의점을 운영하며 나름의 노하우를 쌓아온 저자는 손님들의 특성을 포착했고, 그들에게 미스테리(?)한 이름을 붙여주면서 고된 시간을 견디었다. 매일 아주 작은 크기의 물품을 택배로 보내는 손님, 얼음컵 12개를 구입해 사라지는 손님 등은 그렇게 이름을 갖게 됐다. 이름을 불러주면 의미가 된다 했던가. 별 거 아닌 사연들이 주목의 대상이 된 순간 상대는 평범한 ‘손님‘에서 ‘특별한’ 존재로 격상됐다.

먹고 살기 위해 운영하는 편의점이므로 매출에 민감할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안 팔려 폐기 처분하는 물건을 최대한 줄이고, 팔리지 않았음에도 물건이 사라지는 일을 방지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아도 부족할 마당에 저자는 신제품을 먼저 제 입에 털어넣으며 호기심을 해결했다. 정기적으로 본사에서 나와 재고 파악을 할 적마다 뜨끔했을 테지만, 대신 손님들의 물음에 제깍 응대가 가능해졌다. 그건 앞으로의 장사를 위한 일종의 투자였다. 물건의 진열 또한 세심했다. 술과 안주처럼 으레 함께 팔리는 물건을 가까운 위치에 배치하는 건 물론이요, 커피의 경우 라떼, 아메리카노, 블랙 순으로 각을 잡았다. 잘 팔리는 물건 못지 않게 손님 손이 닿지 않는 물건에 대해서도 고려했다. 그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예 퇴출되는 상품들이 발생했다. 단순한 일이고,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했으나 누구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이 편의점 운영이었다.

옛 생각이 난 대목도 많았다. 가게에 발이 묶여 있다 보니 식사가 늘 변변찮았다. 갓 유통기한을 넘겨 더는 판매가 불가능해진 삼각김밥이나 도시락 등이 늘 식탁에 올랐다. 조금 더 신경을 쓴다면 목이 매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컵라면을 하나 추가하곤 했다. 어쩌다 이를 먹는 10대 아이들에겐 별미요, 훌륭한 식사일 수도 있지만 내겐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집밥이 온갖 삼각김밥을 데워 만든 비빔밥이 되었는데, 배앓이가 잦았다. 컵라면도 그랬다. 편의점에는 라면 국물 따위를 버리는 통이 있기 마련인데, 그 통에서 나는 냄새가 무척이나 역겨웠다. 엄마는 하루에 두세 번씩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통을 닦아댔다. 난 아직도 삼각김밥을 못 먹는다. 컵라면도 가급적 집 밖에서는 안 먹는다. 나의 문장은 과거형인데, 저자에겐 현재형이다. 아마 그는 오늘도 팔다 남은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할 거다.

책 한 권을 읽었는데 겨울-봄-여름-가을, 사계절이 흘러갔다.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진 않다. 이른 새벽에 눈을 뜨고, 손님에게 응대하다 보면 하루가 끝난다.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의미를 발견하는 건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비가 와 건물 안에 사람들 발이 묶이는 날이 대목이라는 걸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날씨의 변화에 따라 팔리는 품목에도 변화가 발생한다는 사실 역시도 저자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겐 관심사항이 아니다. 우린 각자 주어진 위치에서 제 나름의 몫을 하며 살고 있다. 쉬운 삶은 없다. ‘편의점이나 차려볼까‘ 같은 가벼운 표현은 이제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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