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며느리 사표

[도서] 며느리 사표

영주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4점

제목이 강렬하다. 그리하여 애인을 사귀기도 전에 며느리 사표부터 부르짖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고야 말았다. 명절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 세상의 많은 며느리들은 물론 결혼 제도에 회의적인 시선을 견지해온 사람들, 더불어 그저 제목에 이끌린 이들까지도 손을 뻗게 만드는 제목이었다. 대체 저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처음에는 여성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인물이거나 평탄치 아니 한 결혼 생활을 청산한 경우 즈음에 해당할 줄로만 알았다. 나이는 아마도 젊으리라! 나의 모든 예측은 빗나갔다. 지독한 고정관념이 내 발등을 찧는 역사가 이렇게 발생했다.

결혼 23년차. 대강 짐작하기를 아이들은 이미 성장해 성인이 됐겠지 싶었다. 참고 살다가 아이 성장 후 이혼을 결심하는 많은 커플들이 있었던 지라 비슷한 모양새가 그려졌다. 게다가 남편이 대가족의 장손이다. 처음에는 시부모와 함께 살았고, 줄곧 새벽 5시부터 기상해 음식을 장만하는 전형적인 며느리의 모습을 유지해왔다. 아, 상상만으로도 갑갑하다. 감당할 자신이 도무지 서지 않는 생활의 연속이었을 듯했다. 변화는 두렵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익숙한 것에 안주하기 마련이다. 상황이 아무리 불편해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새 생활로 뛰어드는 일은 그리하여 도통 발생하지 않는다. 대다수와 다르게 저자는 용기를 냈다. 분가를 결심했고, 어느 시점에는 며느리 사표라 하는 걸 던졌다. 그 결단이 자못 놀라웠다. 노발대발할 줄 알았던 시부모가 보인 의외의 따스한 반응은 앞서 저자의 불안하던 마음을 무색하게 만들 지경이었다.

많은 이야기가 이어졌고, 예상했던 대로 적잖은 부분은 저자 개인의 경험에 기반한 것이었다. 모든 가정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저자는 관계 속에서 시부모와 남편이 원하는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노력은 오랜 시간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에겐 필수일 거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게 무언지 더는 묻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자아를 상실한다면 그와 같은 노력은 스스로를 향한 칼날이라고 밖에 평할 수 없다. 최근에는 조금 나아졌을 수도 있으나 예로부터 가사노동은 가치를 인정받는 무언가가 결코 아니었다. 결혼하면 여자들이 당연히 해야만 하는 무언가. 퇴근도 휴가도 없는 갑갑함 그 자체. 알게 모르게 저자는 지쳐가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아우성이 내면에서 일었을 것이다.

며느리 사표를 유효하게 만들어 주는 특단의 조치가 이어졌다. 아들과 딸의 독립이 바로 그것이었으니, 철저히 저자의 머릿속에서 구상된 만큼 처음에는 걱정이 일었던 것도 사실이다. 집을 가장 편안한 공간으로 알고 지냈던 자녀들의 입장에서 갑자기 독립을 요구받는다면 꽤나 당혹스러웠을 듯. 스스로 모든 생활을 이끌어 나가는 일은 처음이므로 걱정이 앞섰지만 실상은 생각보다 양호했다. 매사 힘들지만 대신 열심히 살고 싶은 의욕을 얻었다는 자녀들의 모습에서 나날이 단단해지는 고목이 연상됐다. 나이만 들었지만 한 번도 어른이 되어 보지 못한 나에게도 어쩌면 독립이 필요할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마냥 자극적이진 않았다. 아니, 진지함은 어느 순간 깊이를 헤아리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갔다. 심리학이 등장했고, 꿈의 해석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마냥 호기심에 취해 있던 이들로서는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아내, 시부모와 며느리 등의 관계를 떠나서 ‘성장’이라는 관점을 취하면 이야기가 보다 쉽게 읽힐지도. 궁극적으로 저자는 독립으로 나아갔다. 자신만의 공간을 얻었고,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 주어진 역할이 아내이자 며느리이므로 해왔던 많은 이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 중 으뜸은 건강성의 회복일 거다. 무언가를 행하기에 앞서 작아지기만 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자신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일 수 있게 됐다. 표현이 서툴고 방법이 투박해 닿기 힘들었던 배우자의 태도 역시 저자가 강건해짐에 따라 변화했다.

연일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온다. 누가 누구에게 폭력을 가했다더라, 누가 누구를 학대했다더라. 끔찍한 소식의 꽤 많은 비율이 가정 내에서 벌어진다. 직접 칼을 들고 위협을 가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건강치 못한 방식이 존재한다면 그 고리를 끊고 나올 수 있는, 사표를 던질 수 있는 용기가 그대에게도 존재하기를. 나 또한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