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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도서]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악셀 하케 저/장윤경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얼마 전 미국의 대선이 끝났다. 결과는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건 당연함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이미 한 차례 경험한 탓이 컸다. 어찌 그와 같은 인물이 한 나라를 대표하는 자리에 선출될 수 있었는지 난 지금도 의문이다. 해당 국가 사람들의 수준 낮음을 원인으로 차마 꼽을 순 없었다. 부정선거를 의심하느니 차라리 선거제 자체를 의심하는 편이 나았다. 유럽 전역에 끔찍한 역사를 선사했던 히틀러도 합법적인 선거에 의해 선출됐었으므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조금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이번 선택이 과연 정녕 옳은 선택이 맞는가 의구심이 일기도 했다. 의심할 거리는 도처에 널렸다. 이제껏 인류는 진보해왔다고 배웠다. 경제적인 측면만을 놓고 본다면 이는 맞는 말이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인터넷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스마트폰은 또 어떠한가. 개개인이 폰을 들고 다니면서 통화하는 시대가 열릴 거라는 상상 자체가 최근에 시작됐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 지경이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삶은 더욱 척박해졌다. 사람들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이 해를 거듭할수록 짙어만 진다. 코로나19로 대변되는 이상한 바이러스 탓만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뉴스를 틀면 믿기 힘든 소식이 한 가득 쏟아진다. 다같이 정신을 잃기로 작정이라도 한 게 아닐까 묻고파진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무례한 시대’를 우린 살고 있다. 생존이 모든 욕구를 억눌러 버린 시대, 오로지 살기 위해 모든 걸 짓밟는 게 용납되는 시대. 부디 그런 시대는 아니었으면 싶건만, 언제나 슬픈 예감은 틀리질 않아 큰일이다.

개개인이 노력한다고 한 번 뒤틀린 흐름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싶다. 단위가 하나의 사회, 더 나아가 거대한 시대인데, 개개인이 지닌 힘은 이에 대적하기에 한없이 미천하게만 느껴진다. 그렇다고 시류에 편승하고 싶은 마음은 안 든다. 솔직히 성공 대열에 합류한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이 앞서지만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달리기 바쁜 경주마가 된다는 게 위험할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국가에 충성해서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그들의 삶은 한결 수월했겠지만 역사는 그들을 나치, 일제 부역자 등으로 기억한다. 묻고 따지지 않으면 그리 되기 십상이다. 아니, 그들은 외려 철저히 묻고 따진 끝에 스스로 그 길을 택해 걸었을 수도 있다. 믿음이 강렬하면 사실 아닌 것도 사실로 돌변한다. 그들에겐 자신들이 택한 게 곧 품위였다. 유대인 학살에는 가담했지만 유대인의 재산을 함부로 빼앗지는 않았다는 말로 그들은 자신의 품위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청렴한 공무원으로서 명령을 이행했을 뿐 그것이 나라를 팔아먹은 건 아니라는 식의 변명 또한 그들에겐 진심이었다. 일종의 발뺌이고 비겁한 변명처럼 들리지만 그들이 거짓말을 한 건 결코 아니다. 그들의 세상에선 그게 진실이었고 진리였을 뿐이다.

시대가 무례하더라도 품위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 세상을 바꾸는 건 바보라는 말이 떠오른다. 한 개인의 삶 단위로 사고한다면 바보라는 평은 진정 옳다. 철로로 떨어지는 아이를 보자마자 뛰어내려 아이를 구하고는 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우린 보았다.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제안을 자신의 신념에 반한다며 용기 있기 뿌리친 이들도 꽤 많다는 걸 우린 잘 안다. 너무 거창하다면 이건 어떠한가. 저자의 친구는 맥주를 고를 때 제조사가 도덕적으로 정당한가를 묻는다.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회사, 해고를 밥 먹듯 행하는 회사의 제품은 소비하기에 앞서 고민하고 거부하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하진 않다. 아니, 겉으로 드러나는 실천이 아니어도 좋다. 무언가 행하기에 앞서 나는 물론이거니와 타인을 한 번 더 살피고 보듬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상대의 아플 마음을 헤아려 인터넷에 익명으로 험한 댓글을 남기지 않는 거, 내가 그러하듯 상대도 미래에 대해 혹은 오늘날 누리고 있는 것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을 느끼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거.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변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모든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만 하는 거. 저자는 품위가 그런 거라 말했다. 마땅히가 곧 저절로를 뜻하면 좋으련만, 슬프게도 우리는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시대가 우릴 이렇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과거에도 인간은 부단한 노력 끝에 품위를 상실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걸까. 어느 쪽이건 현 시대는 무례하다. 가만히 있으면 자꾸만 우린 무례한 시대와 닮은꼴이 되어간다. 내가 잘 살기 위해 너는 필요 없다며 막말을 일삼게 되고, 타인을 배척하고는 외로워 떨게 된다. 품위 없는 삶은 서럽다. 품위 없는 삶은 볼품없다. 우리의 삶이 멋드러졌으면 한다. 안팎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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