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상황을 맞닿드려도 저마다의 반응이 다르다. 누군가는 미리부터 발생 가능한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가며 준비를 시작하는데 반해 다른 누군가는 정해진 기일이 도래할 때까지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가 막판에 휘몰아친다. 나와 다른 사람을 ‘틀리다’고 평해선 안 된단 걸 잘 알면서도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의문이 드는 건 어찌하기가 힘들다. 아마 상대도 마찬가지일 거다.
사실 나에게는 나조차도 이해가 힘든 구석이 많다. 오늘 읽은 책이 다룬 ‘완벽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완벽하기라도 하면 모를까, 빈틈이 참 많으면서 완벽하길 꿈꾸니 민망하다. 제발 현실적으로 생각하자고 마음을 먹어보지만 사고의 흐름은 언제나 내 의지를 거스른다. <네 명의 완벽주의자>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땐 문자 그대로 사람을 떠올렸다. 역사에서 위대한 인물들 중 완벽주의자 네 명을 꼽아 다룬 책이겠거니 짐작했는데 아니었다. 저자는 완벽주의의 유형을 총 네 가지로 나누었다. 눈치백단 인정추구형, 스릴추구 막판스퍼트형, 방탄조끼 안전지향형, 강철멘탈 성장지향형이 바로 그것이었다. 각각의 유형이 어떤 성향을 의미하는지는 명칭을 통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눈치백단 인정추구형의 경우, 주변 사람들의 시선 등을 끊임없이 신경 쓰고 헤아리는데 능한 유형이다.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크게 모남이 없고,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배려심이 가득하므로 주변 사람들의 환대를 받을 확률도 높다. 그러나 잣대라 남, 외부에 있다 보니 빚어지는 문제가 상당하다. 휴식이 필요할 정도로 피곤한 순간에도 나를 돌보지 못한 채 타인이 바라는 내가 되고자 안간힘을 쓰는 이가 있다면 바로 이 유형이다. 눈치백단 인정추구형이라면 부탁을 거절 못한 채 끌어안고 전전긍긍한 경우도 잦을 것이다. 스릴추구 막판스퍼트형은 굉장히 게을러 보일 수 있으나 사실은 아니다. 기왕 하는 거 완벽해야 한다. 이것저것 고려해야 하는 게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많다 보니 시작 자체가 힘들다. 제출 기한이 됐음에도 여전히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데다 타인으로부터 들을 평이 두려운 나머지 완성에 도달하지 못한다. 방탄조끼 안전지향형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일에 에너지를 쏟아붓는 유형이다. 나름 안정적인데다 성과도 나쁘진 않은데 반해 과정이 지난하다. 진을 빼면서 일을 했는데 그 사실을 주변에서 알아주지 않기도 한다. 유연성이 다소 떨어지다 보니 기회가 왔을 때 놓치기가 쉽다. 해당 기회를 포착했을 때 내가 얻을 수 있는 것과, 반대로 포기해야 하는 것 사이의 저울질을 과도하게 하다 보면 적절한 때는 지나가고야 만다. 마지막으로 강철멘탈 성장지향형은 굉장히 긍정적이며, 실패에 지나치게 흔들리지 않는다. 모든 경험으로부터 배움이 가능하다는 특유의 믿음이 당사자를 성장으로 이끈다. 하지만 할 수 있다는 마음이 거대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에는 서툴다. 상대가 실수하고 괴로워할 때면 말없이 보듬어 주기보단 아무것도 아닐 일에 왜 힘들어하냐며 핀잔을 줄 가능성이 크다. 같은 완벽주의임에도 이토록 다를 수가 있다는 사실이 우선 놀라웠다. 정확히 들어 맞는다고 하긴 힘들지만 내 자신이 어느 유형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때론 스스로를 ‘비정상’이라 평하기도 했는데, 나와 비슷한 이들이 세상에 또 있다는 사실로부터 다소 우습긴 하나 약간의 위안을 얻을 수도 있었다.
완벽주의가 병은 아니나 이에 매몰된 나머지 괴롭다면 달라질 필요가 있다. 저자는 전적인 교정보다는 자신이 지니지 못한 부분을 조금씩 보완할 것을 주문했다. A를 B나 C로 바꾸는 일은 힘들지만 A에 A1, A2 등을 더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내가 싫어하는 A일지라도 나름의 강점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미 지닌 강점까지도 버리려 들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면서 보다 나은, 정확히 표현하자면 보다 행복한 나를 만들 수 있다면 그리 하는 게 현명하다. 제시된 해법들은 스스로에 대한 진단을 필요로 했다. 지금의 내 완벽주의가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를 곰곰이 떠올려보고, 그와 같은 일을 겪었을 무렵 내가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적어보는 등의 시도가 그것이었다. 글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을 테지만,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이 막연하다면 눈 앞에 쓰인 글은 객관적이고도 분명하게 나를 바라볼 수 있게끔 해준다. 지필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였다. 내 안에 깃든 완벽주의가 무엇인지, 그로 인해 지금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있다면 무언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마냥 거추장스러웠던 완벽주의의 긍정적 측면에도 눈뜰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