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도서]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저/민경욱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히가시노 게이고. 표지에 그의 이름이 적혀 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책을 택한다. 경험상 난 그의 책에 늘 높은 만족을 느껴왔고, 이번에도 그러리라는 일종의 믿음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매우 묵직하지도,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도 않은 그의 추리소설은 심오함을 요구하는 이들에게는 적당치 않을 수도 있다.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또한 전형적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냄새가 났으니, 이제까지 자신의 마음이 그의 작품에 어찌 반응했는가를 곰곰히 살핀 후에 이 책을 읽을지 여부를 결정하면 딱이지 싶다.


터무니 없다는 표현은 작가에게 예의가 아닐 수도 있으나 이 경우에는 왠지 사용해야만 할 거 같다. 단편 추리소설 여러 개가 엮여 하나의 책을 구성했는데, 모든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건 다음 아닌 작가다. 여기서의 작가는 저자 자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어느 쪽이 됐건 글 쓰는 걸 업으로 삼은 이를 약간은 비꼬는 것 같은 인상이 들었다. 어떠한 시도를 하더라도 글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운 현실이 저자에게 자괴감을 준 건가 의심이 가기도 했으며, 그럴수록 글 쓰는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는 게 필요하다는 위기의식의 발로 같아 보이기도 했다.


첫작에서 주인공인 작가는 무슨 이유에선가 평소보다 많은 수입을 올렸다. 많이 벌었다면 세금도 그에 따라 증가하는 게 당연한 이치일 테지만 왠지 국가에 돈을 바치자니 억울하고, 결정적으로 세금을 감당할 만큼의 돈이 수중에 없다. 있는 대로 영수증을 긁어 모으고, 지금까지의 소비 내역을 소설에 반영하면서 산골짜기에서 노를 젓는 형국에 이르고야 만다. 어처구니 없어하며 혀를 내두르다가도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선 이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리라고 생각하니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과계 살인사건은 문과 DNA를 타고난 나로서는 도통 이해가 어려운 작품과도 같았다. 평범한 두뇌, 평이한 삶을 살아온 부류로서는 범접하기 어려운 장르(?)를 이과로 규정하는 일은 실제 이과에 능한 이들 역시도 바라던 바라는 듯, 저자는 이과라는 하나의 집단을 구성하고, 이를 일반 사회로부터 분리해내려는 시도를 소설 속에서 거침 없이 시도한다. 순전히 호기심에 응했다고 하기에 주인공의 집중력이 과하다 했더니 앗!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는 책을 읽지 않은 이들을 위해 비밀로 남겨두고자 한다.

이어진 작품은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에 도달했다는 일본 사회의 어둔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듯했다. 90살을 넘겨서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이는 소설가의 모습이 멋져 보였으면 좋으련만, 저자는 ‘치매‘라는 끔찍한 병마를 그에게 선사한다. 하필이면 그는 추리 소설을 주 장르 삼은 인물인지라 치밀히애먄 하거늘, 했던 말을 또 하고 자신이 창조한 인물의 이름마저도 헷갈려하는 노작가 앞에서 편집자은 세상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야 만다. 그런 그도 이미 70살을 넘겼으머, 책 안 읽는 사회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독자들의 처지 또한 크게 다르지가 않다. 과연 책은 소멸할 것인가. 작품과는 별개로 출판업계의 미래를 나도 모르게 고민하게 됐다. 아마 우리나라의 사정도 이와 비슷할 듯.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하고픈 욕망에 굴복한 결과가 낳은 비극을 다룬 ‘예고소설 살인사건‘이나 내요보다 형식, 그것도 글자수, 두께, 심지어 무게 등에 집착하는 출판사의 현실을 꼬집은 ‘장편소설 살인사건’, ‘독서 기계 살인사건‘ 등도 저자가 몸담은 세계를 여실히 그리고 기발하게 드러냈다.

웃프다. 이와 같은 표현이 정확히 저자의 작품을 수식하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냥 웃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씁쓸한 상황이 끊임없이 전개됐다. 차라리 허무맹랑한 소설에 불과하다면 좋으련만, 일정 부분은 현실에 발을 걸치고 있어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래서 더 몰입해 읽을 수 있었던 것일지도. 이번에도 예상대로 히가시노 게이고는 훌륭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