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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다는 것

[도서] 곁에 있다는 것

김중미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살고 있는 동네에 재건축 이야기가 떠돌고 있어서 그런지 여느 때보다도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누구에게나 앞날은 미지라지만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이 사라진다면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내 부모가 땀 흘려 일군 많은 것들이 나에게도 허락될까, 단군 이래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게 오늘날 젊은이들이라는 말을 내 삶을 통해 증명해 보이게 될까. <곁에 있다는 것>을 읽으면서 초반에는 불안감을 많이 느꼈다. 타인의 불행을 통해 내게 닥칠지도 모르는 불운을 점치는 매우 불경한 태도를 왜 취하게 됐는지는 모를 일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마음이 조금은 훈훈해졌으니 나로서는 그저 고마웠다.

인천 만석동. 아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일 거다. 대강 짐작하기로는 바다가 가까워 부는 바담마다 알게 모르게 짭쪼름한 향이 묻어났을 듯하다. ‘달동네’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둔 채 다닥다닥 이어진 집들의 모습도 그려진다. 그것이 내 안에 깃든 가난의 형상일지도. 지우, 강이 그리고 여울이. 세 명의 아이는 같은 동네에서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성장했다. 같은 배경을 공유하고, 적잖은 공감대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 하여 이들의 삶이 완벽히 동일한 건 아니었다. 이는 제3 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가난을 상징하는 듯했다 그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아니한 채 “저것이 가난”이라며 획일적으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는 일이 이 세상엔 비일비재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 인물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도 동시에 각기 다른 입장을 취했고, 서로 다른 미래를 상상했다.

많은 정책이 이들의 삶터를 배경으로 전개됐다. 과거 같았으면 가난의 흔적을 지우는 일에 골몰했다면, 조금 덜 폭력적이라는 평을 듣는 도시재생이나 마을공동체 사업이 근 5년 사이에 각광 받았다. 저자가 그려낸 은강 마을에서도 이는 유효했다. 골목 담장이 벽화를 위한 캔버스로 변신했고, 기존의 사람들이 다른 동네로 밀려나지 않았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몰려오기도 하였으며, 흐르는 시간을 머금은 마을은 자연스레 낡고야 말았다.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다. 사업 수완 좋은 구청장은 마을을 하나의 관광 자원화 하길 바랐다. 가난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 빈민들의 삶을 보여주기에 적절한 장소. 주민들이 이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의도적으로 망각했을 수도 있다. 내가 이상적으로 여겨온 정책들이 그릇된 미래의 양산을 낳은 건 아닌지 의심이 일었다.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다고는 했으나 다분히 형식적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불편했다. 부디 내 과오의 무게가 가볍기를.

내 안에 이는 온갖 부정적인 사고와 별개로, 저자는 앞서 언급한 세 인물을 중심으로 한 희망을 빚어냈다. 그들의 어림은 어리석음이 아니었다. 고된 싸움이 되리란 걸 알았고, 크게 기대한 것도 아니었지만 결심했고, 실천했다. 가가호호 방문하며 의견을 수렴하고, 지역 언론을 활용해 선전전을 전개하고, 용기 내어 1인 시위자로 나서고. 비로소 맞이하게 된 호응은 그들에겐 어쩌면 낯선 것이었다. 인정받기 힘들었던 날들에 반하는 결과가 뜻하는 바는 무얼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스스로를 지배해온 패배의식으로부터의 탈출. 혼자 아닌 여럿이서, 함께였기에 누리게 됐다는 점이 돋보였다. 제목 또한 ‘곁에 있다는 것’이었다. 삶이 버거운 나머지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달린 날들이 역설적으로 나에게 고립감을 선사했음을, 나 하나는 미약할지라도, 그런 미약함끼리도 뭉치면 하나의 의미 있는 흐름을 창출해 낼 수 있음을 인물들은 경험으로써 증명했다.

2021년 봄에 저자는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가던 무렵을 조명했다. 이제는 하나의 역사가 된, 누군가에겐 부정하고픈 시간이 되기도 한 그 시절, 분명한 건 적잖은 이들이 한 목소리를 냈었다는 점이다. 거리에서 함께하는 순간만큼은 당신이 어디에 살며 어떤 일에 종사하는지 따위가 중요치 않았다. 나와 너를 가르는 수많은 경계가 허물어지는 신기한 일이 곳곳에서 일어났으니, 하나된다는 게 무언지, 그 시절을 함께하며 많은 이들이 느꼈지 싶다. 소설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지우, 강이 그리고 여울이 들 또한 꿈꾸고 있을까, 아니면 절망에 절망을 거듭한 나머지 제 안에 존재하는 힘을 잊고야 만 건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코끝이 괜시레 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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