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방금 떠나온 세계

[도서]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내가 읽은 김초엽의 첫 작품이다. 작가 이력을 습관적으로 건너뛴 상태에서 접한 작품은 이제껏 읽어왔던 여느 작가의 글과는 사뭇 달랐다. 살아온 배경이 각자에게 서로 다른 세계를 선사한다는 걸 확연히 깨달은 계기이자, SF 장르에 대해 내가 지녔던 ‘유치하다’는 편견 또한 깨트린 경험이었다. <방금 떠나온 세계>를 연장선 차원으로 받아들여도 좋을까. 여전히 그의 글은 내게 낯섦으로 다가온다. 한 마디로 신선했다. 나로서는 도통 상상조차 하기 힘든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지는데 자칫 난해할 수도 있음에도 계속해서 흡입하게 되는 게 아무래도 중독성이 짙은 모양이다.

낯섦은 대개가 두려움을 선사한다. 작품의 정확한 시대에 대해 저자는 말을 아꼈다. 이미 지구라는 별은 지금과 같은 활기를 상실한 모양새요, 현생 인류 또한 역사 책에서나 등장할 법한 전설로 생명체들 사이에선 회자되고 있는 걸로 보아 수천 년 혹은 그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같았다. 이는 현재 존재하는 지구 밖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제약이 풀렸음을 뜻한다. 지구가 더는 가능성을 지니지 않았으므로,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지구로부터 탈출해야 마땅했다. 아니, 이미 ‘우리’라는 단어로 누군가를 지칭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저자는 오늘날의 인류와는 다른 존재로 하여금 그들이 속한 세상을 이끌도록 지시한다. 한 때 인간의 손길이 만들어냈지만 더는 인간에 속하지 않는 이들이 등장했다. 기계는 아무리 완벽해도 기계여서 상대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일에 서툴렀고, 여전히 인간에게 종속된 무언가여야 마땅했다. 그것은 프로그래밍에 따라 탄생한 이상 지녀야 하는,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와도 같았다.

우주라는 광활한 단위로 사고했을 시 인류는 티끌 혹은 그보다도 적은 존재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인류가 사라진다 한들 우주가 멸망으로 치닫지는 않으리라는 게 분명하건만, 작품 속 세상은 마냥 긍정적이만은 못했다. 그간 추구해온 완벽이 지나친 나머지 어딘가 모르게 인간미가 부재했다. 나 또한 인간이라는 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에 빚어진 오해일 수도 있지만, 따사로운 햇볕과 청량감을 선사하는 바람이 지닌 힘을 파괴력으로 해석하고 이를 피해 지하 생활을 감행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아서는 내가 마냥 틀렸다고 보긴 힘들지 싶었다. 생명은 유한하고 언젠간 나도 소멸할 운명을 타고 났다. 그간 오래 살길 간절히 소망하였는데, 장수의 결과가 혹독한 현실과의 만남이라면 굳이 두 눈 부릅뜨고 내 생을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일기까지 했다. 기억을 변형시키거나 아예 지우면서까지 인지 공간을 창조해낸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결국 또 다른 유한성 안에 우리 자신을 가두는 행위가 아닐지.

그렇다고 저자가 마냥 부정적인 시각으로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했던 건 아니다. 인물들은 내리 평행성을 그으며 달리는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서로를 응시한다. 한 쪽은 옳고 반대편은 틀렸다는 식의 가치 판단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물론 세상 사람들의 비난 혹은 몰이해는 계속되지만, 적어도 저자가 주인공격으로 삼은 이들만은 달랐다. 아름다운 별 벨라타인의 사람들은 얼마든지 정복할 수 있는 ‘오브’와의 공존을 택한다. 채 30년도 되지 아니 하는 짧은 삶과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겪어야만 하는 끔찍한 몰입 과정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은 오브들이 그들과 기꺼이 나누고자 했던 시간을 존중한다. 귀신이 출몰한다는 유치한 괴담으로서만 존재할 수도 있었던 울산의 한 관람차는 한없이 더디 흐르는 언니의 시간에 다가서는 매개체로서 작용한다. ‘국지적 시간 거품’이라는 저자가 사용한 용어를 전적으로 이해한다고 하긴 힘들지만, 적어도 ‘언니가 옳았다’라는 유현지의 확신에 대해서만큼은 수긍할 수 있었다.

확연히 다른 듯하나 결국 이 또한 세계였다. 난 전혀 연결고리가 존재치 않는 듯한 그 세계에 저자의 도움을 받아 발을 디뎠다. 마냥 차디찰 줄 알았는데 그 곳에서도 공감이 가능했다. 왠지 인간이라곤 오로지 나 하나뿐일지라도 외롭지만은 않으리란 생각에 적잖이 위안을 얻었다. 우주 차원으로 시야를 넓혀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지구 안에서야. 외따로 떨어져 반복하기 바쁜 우리 사이에도 통하는 무언가는 있지 않을까 한다. 기꺼이 당신 세계에 발을 디디리라. 당신을 품음으로써 내 고독의 단단한 표피를 깨트리고 싶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