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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의 탄생

[도서] 수술의 탄생

린지 피츠해리스 저/이한음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크게 아픈 적이 없었음은 실로 행운이다. 실력 있는 의시가 많고, 대부분 치유에 성공한다는 믿음이 있다곤 하나 굳이 병원을 드나들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평소와 조금이라도 다른 통증 같은 게 느껴질 때면 두려움이 일기도 한다. 혹 병원에서도 손을 쓸 수 없는 어마어마한 질병의 가능성에 대해 머릿속으로 소설을 쓰다 보면 고맙게도 그와 같은 증상은 사라지고는 해왔다.

심리적인 거리낌과는 별개로 아프면 병원을 가야 한다는 사고는 보편화됐다. 과거에도 의료진은 존재했지만 현재와는 그 양상이 사뭇 달랐던 듯하다. 조지프 리스터의 인생을 닮은 <수술의 탄생>을 읽는 동안 내가 가장 자주 느꼈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인류의 역사가 곧 진보라고 하였지만, 진보 이전의 삶이 이토록 끔찍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바 없었다. 부디 상상이었으면 좋겠지만 엄연한 진실이었다. 콧물이 흐르거나 기침이 나는 일에 대한 단순한 처방을 뛰어넘어 그 시절에도 외과적 처치, 즉 수술은 존재했는데 그 형태가 오늘날과는 여러 모로 달랐다. 다른 곳도 아닌 수술실이므로 더욱 중시돼야 했을 위생에 대해 어느 누구도 관심을 아니 가진 듯했다. 수술복은 앞선 수술로 인해 있는 힘껏 더럽혀진 상태였는데, 오히려 이는 전임자의 놀라운 성과를 의미하는 걸로 여겨져 영광처럼 받아들여졌다. 코로나19 이후 더더욱 중시된 손 씻기마저도 행하는 이가 없었다. 피부를 자르고 꿰매는 도구라 하여 깔끔했을 리 없다. 수술대에 누울 수 있었던 이들은 한정적이었다. 적잖은 이들은 입원 거부를 당하였다. 부유한 이들이라면 제 집에서 치료받기를 택했다. 보다 익숙한 환경에 대한 선호가 이에 영향을 미쳤을 터이나, 한 편으로는 병원이 죽음의 신이 머무는 공간처럼 인식됐던 탓이 컸다.

저자의 서술 속 리스터는 괴짜의 모습과 닮은 꼴이었다. 집안은 부유했고, 그는 아버지의 부에 힘입어 오래도록 직업전선에 뛰어들지 않아도 됐다. 허나 아버지가 그에게 선사한 최고의 선물은 현미경 같았으니, 리스터는 당대 많은 의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현미경을 활용해 온갖 조직을 살피고 성실하게도 이를 일일이 그림으로 남겼다. 유약할 것도 같았지만 사방으로 피가 튀는 수술실에서 달아나지 않았던 걸 보면 나름 담력을 타고는 난 듯도 했다. 오늘날 의학이 그로부터 힘입은 바가 크단 걸 감안하면 그의 담대함은 인류에게 축복이었다.

오늘날이었으면 윤리적으로 용납되지 않았을 많은 시도가 당대엔 자유로웠다. 인간이 아니므로 살아있는 개나 개구리 등이 영문도 모른 채 실험 대상으로 전락했다. 지극히 정상인 뇌를 드러내고 부분 부분을 순차적으로 망가뜨려가며 인체의 신비에 대한 이해를 높였던 당시의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절로 일었다. 물론 그와 같은 과정이 있었기에 리스터와 같은 거장의 탄생이 가능했던 것이리라. 또한, 리스터는 자신이 옳다 여기는 것을 추구함에 있어 강인한 집념을 보였다. 그는 상처 부위가 짓무르고 고름이 생성되는 걸 주목했으며, 온전히 의학 분야라 하긴 힘든 파스퇴르의 이론을 받아들이고 응용하여 자신만의 방식을 고안했다. 성공 사례가 쌓여가는 와중에도 세상은 스타의 탄생에 대한 거부 반응을 여실히 드러냈으며, 오랜 기간 동안 그의 소독법은 금기처럼 여겨지기도 하였다.

꼼짝없이 죽을 운명이 처한 인물들이 그의 손 아래서 생명을 되찾았다. 게다가 당시엔 더욱 거대한 영향력을 선보였을 여왕 치료에까지 성공하면서 그는 의학 그 자체처럼 추앙받기 시작했다. 의술 그 자체도 물론 훌륭했지만 그를 위대하게 만들어 준 건 따로 있었다. 그의 기록은 착실했다. 의술을 독식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담긴 듯도 했다. 비록 이를 받아들인 이들이 충분히 성실하게 기록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리스터의 이름에 먹칠을 한 경우도 없진 않았지만, 마음을 먹는다면 누구라도 그를 스승 삼아 자신의 의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추종자들이 심히 많아진 후에도 그는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1870년에 시작한 연구의 기록이 1899년까지 이어질 정도로, 그는 끊임없이 미흡한 점을 고쳐가면서 스스로 발전을 일구었다.

<수술의 탄생>은 의학 서적이기에 앞서 한 인물의 생애를 촘촘히 다룬 헌사였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의학계의 불확실성을 한 꺼풀씩 제거해 나간 리스터의 모습에 한동안 말을 잃었다. 신은 이따금 이토록 초인적인 존재를 탄생시킴으로써 인류가 절망에 늪에 빠지는 걸 방지하는 모양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기꺼이 순응한 모든 이들에게 건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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