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그녀의 일생

[도서] 그녀의 일생

김지민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제목보다 표지의 그림이 이 책의 정체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내가 거주하는 지역에도 놓인 소녀상이다. 한낱 동상에 불과하다 여길 수도 있으나 이것이 상징하는 바는 분명하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흐르기도 하였고, 생존자들의 수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살아 계신 분들은 자신의 경험을 만천하에 증언하기에는 심히 고령에 다다르셨다. 해결이 요원한 문제에 맞서 장기간 동안 투쟁해온 것이 어르신들의 건강을 악화시킨 건 아닌지 염려가 되기도 한다. 과연 이 문제에 끝은 있을까. 엄연히 존재함에도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하거나 털어 내야만 할 과거 즈음으로 치부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끊임없이 다루어져 왔음에도 용어의 사용에 대한 합의부터가 난해한 것이 “안다”는 말을 해선 왠지 아니 될 것만 같기도 하다.

‘위안부’. 뭔가 편안함을 선사하는 사람 등을 의미하는 듯한 뉘앙스가 풍기는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게 과연 옳은지 판단이 쉽지가 않다. 정체성을 다투기 위해서는 용어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기에, 저자는 이를 이야기의 출발 지점으로 삼았다. 생존자들의 입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듯한 용어이나, 그렇다고 ‘성 노예’ 등으로 그들을 지칭하는 건 더더욱 예의가 아닌 것만 같다. 결국 작은 따옴표를 사용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입장은 정리된 모양새다.

증거도 명확하다. 자신의 경험을 용기 내어 증언해 주신 많은 분들이 계셨고, 그들 중 일부는 여전히 생존자로서 제 목소리를 내고 계시다. 패전 후 관련 문서의 인멸을 위해 노력을 했다고는 하지만 사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작성한 공문서와 연합군의 자료에 기재된 내용, 개개인의 기록까지 샅샅이 살피다 보면 이들이 일관되게 일본 당국의 개입을 지적하고 있음을 발견 가능하다. 개개인의 일탈, 자발적인 성 매매로 ‘위안부’의 책임을 돌리려 드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그들이 취하는 전략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부 차원의 사과와 보상은 온데간데없다. 일단 사실을 부정하고, 그게 힘든 경우에는 관료가 개인 차원의 사과를 행하는데 이마저도 극히 드문 그리고 진일보한 사례처럼 보일 지경이다. 생존자 개개인의 의사는 전혀 고려치 않은 채 정부 대 정부 차원의 자금 이동으로 일종의 입막음을 시도하고, 시민사회의 모금 활동 등에 의존하기도 한다. 잘못을 행한 주체가 없는 사과와 보상, 이를 진심으로 해석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일부이나마 증언도 접할 수 있었다. 고통스러웠을 진술의 과정이 머릿속에 절로 그려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아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완성한 이들의 삶에서 존엄성을 엿볼 수 있었다. 평범하지 못한 그들의 삶은 사회에 드리워진 가부장제로 인하여 위로는커녕 공격마저 받았다. 피해 사실을 쉬쉬한 채 살아온 긴 시간 동안 앓았으며,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후엔 어쩌면 더욱 아팠을 수도 있으나 그들은 그치지 않았다. 시민 사회의 지원 또한 그들에게 힘을 부여했을 것이다. 사실을 알리는 일에 앞장선 이들 중에는 가해국인 일본 사람들도 있다. 자국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개선하고 진실을 알리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공감대의 형성 자체가 어려웠다. 친한 지인,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이해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 자신과 같은 성향의 소유자에게만 조심스레 입장을 밝힌다는 이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줄기찬 노력에 비하면 성과라 일컬을 수 있는 부분이 매우 크진 않았다. 혹자는 일본 정부가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외려 적반하장 모습을 보이는 게 시간을 끌면 그들이 승리하리라는 계산 탓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생존자들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은 시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보았다. 생존자들의 가족이 나서서 이 문제가 생존자 개인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증언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보았지만 자식과의 연락이 끊기는 등 생존자들의 경험을 전적으로 긍정하지 못하는 가족들도 많으므로 쉽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교육 등을 통해 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이 문제를 정확히 인지할 수 있게끔 이끄는 것도 개인과 시대를 뛰어넘어 진정한 의미의 해결을 일궈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이 책이 독특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데엔 저자의 이력이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저자는 미국 대학에서 한국근현대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우리의 것을 우리보다 더 심오하게 다루는 타국 대학의 존재는 매우 낯설었다. 저자의 배경이 이러하므로 동아시아, 더 나아가 상대적으로 ‘위안부’ 문제와는 관련성이 덜한 듯한 미국 사회의 ‘위안부’ 인식 등을 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피해자에 대한 내 안의 전형적인 인상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단발머리, 곱게 차려입은 한복 등으로 피해자를 고정해 버리는 건 위험하단 걸 배웠다. 개개인이 겪은 피해는 다 같지가 않다. 하나같이 가난했다는 식의 서술 또한 옳지 않다. 여느 분야보다도 열린 마음으로, 모든 고백에 세심하게 귀 기울일 필요가 있는데, 과연 우리 사회가 그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자질을 갖추었는지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다울 것을 요구하는 사회의 폭력적인 모습이 많은 이들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침묵할 수밖에 없는 원인으로 작용했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