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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의 약속

[도서] 형사의 약속

야쿠마루 가쿠 저/남소현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읽기가 무섭게 잊는 나에게 이는 유독 기억에 남은 문장이다. 아련함이 아무리 강해도 현실로 불러들이는 순간 왠지 모를 후회를 하게 되는 일은 나의 일상에서도 종종 있어왔다. <형사의 약속>을 읽다가 이 문장이 떠올랐던 건 사람들의 평 때문이었다. 등장인물들에 대해 보다 상세히 알기 위해서는 <형사의 눈빛>을 먼저 읽으라는 조언이 많았다. 앞서 시리즈물들을 읽고는 후회한 적이 있다. 선후 관계를 떠나, 하나를 읽고 느낌이 좋아 동일인이 등장하는 다른 작품도 찾아 읽은 것이었음에도 그랬다. 식상함은 생각보다 재빠르게 날 지배했다. 어쩌면 이번에도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 굳이 <형사의 눈빛>을 찾아 읽지는 않을 거 같다. 운 좋게, 기회가 닿는다면 거부하지는 않겠지만. 
<형사의 약속>의 주인공은 나츠메다. 직업은 형사인데, 처음부터 그와 같은 직업을 가졌던 건 아니다. 딸이 일명 묻지마 범죄로 인해 식물인간 상태가 된 후로 사건의 범인을 자기 손으로 잡겠다며 이를 갈았다. <형사의 약속>에선 이미 범인이 잡힌 상태로, 애초의 의도가 달성된 상황이어서 그런지 계속 형사로 일하는 것에 대해 나츠메는 약간 회의감을 느끼는 모양새였다. 
호적 없는 아이, 불혹, 피의자 사망, 마지막 거처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형사의 약속 등 총 다섯 개의 이야기가 연달아 등장했다. 처음에는 주인공이 나츠메라고는 생각을 못했을 정도로 나츠메의 존재감이 미미했다. 정체가 모호한, 게다가 호신용 스프레이를 들고 다니는 아이를 찾고자 안간힘을 쓰는 이들에게 별반 도움이 아니 될 것만 같은 행색의 나츠메가 합류한다. 퇴근 시각이 되기가 무섭게 자리를 뜨는 인물에게 무얼 기대해서는 곤란하다는 시선이 나를 잠식하려 들 무렵에 나츠메로 인해 사건이 해결될 조짐이 보인다. 
첫 번째 이야기는 어쩌면 맛보기였을 수도 있다. 저자는 나츠메에게 조금씩 더 무게감을 부여하며 이후 사건들을 던진다. 여전히 미심쩍은 시선이 내 안에서 꿈틀대지만 뒤늦게 나타나 엉뚱한 방향으로 수사를 이끄는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나의 의혹을 잠재운다. 인과응보 그리고 권선징악. 우리나라의 옛 이야기들이 지닌 전형적인 구도는 다른 나라 작가들의 글에서도 종종 엿볼 수 있는데, 저자는 나츠메를 적절히 활용해가며 그와 같은 전형성을 배격한다. 오로지 실적 올리기에 급급하다거나 범죄를 저지른 인물은 뼛속까지 악할 거라는 고정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어서, 나츠메는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캐내는데 성공한다. 죄는 나쁘고 단죄를 필요로 한다는 명제에는 철저히 동의를 하면서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을 피의자에게서도 인간성을 끄집어내는데, 이 순간마다 나는 일종의 전복을 경험했다. 혹 내가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했다면, 내 주변이 그토록 척박하고 왠지 코너에 몰린 것만 같은 압박감을 강하게 느낀다면? 치유가 불가능해 보이는 상처들에 공감을 하게 되고, 범죄를 통해서라도 이를 극복해보려 안간힘 쓰는 인물들의 모습에 눈물 짓게도 된다. 실제 혈연보다 더욱 친부모-자녀 같은 인물들의 진심을 다른 이들은 못 읽어내는데 어찌 나츠메는 포착할 수 있었을까. 온통 미움으로 치장한 거 같음에도 내면에는 상대를 향한 강한 긍정과 미안함 따위가 깃든 인물들로부터 자백을 받아야 하는 형사라는 직업은 혹 상담가의 또 다른 이름은 아닐까. 

“사람, 아닐까요?”
격렬한 증오조차도 잠재울 수 있는 힘, 그건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비롯된다. 나츠메에게 힘이 되어주었고, 현 시점에서 유우마가 필요로 하는 그런 사람과 우리는 오랜 기간 함께이지 못했다. 희망이어야 할 사람이 절망처럼 여겨지는 시대를 꿰뚫는 이야기들을 읽은 건 실로 오랜만이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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