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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집을 갖추다

[도서] 가구, 집을 갖추다

김지수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미적 감각이라고는 전혀 타고나지 않았음에도 사진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정갈한 게 마음까지 깔끔하게 씻기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좋은 걸 좋아하는(?) 건 능력이나 학습에 의한 게 아닌 본능 같다. 한 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그러잖아도 세상에는 구입하고 싶은 게 참으로 많다. 여기에 가구까지 추가되면 나로서는 감당할 여력이 못 된다. 참아야 하느니라. 지금은 때가 아니다. 처음으로 나만의 집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규모는 작아도 무방하다. 이왕이면 텅 빈 상태면 좋을 거 같다. 하나씩 내 마음에 드는 가구를 골라 배치하며 즐거움을 맛보고 싶다. 아무도 내게 이에 대해 말해주질 않아 몰랐다. 이미 많은 이들이 나보다 앞서 제 집 꾸미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는 사실조차도 난 지금껏 알지 못했다.

코로나19가 인간의 행태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한 달 가량을 주기로 놀러 다니곤 했던 나는 꼼짝 없이 집 안에 콕 박혀 있어야만 했다. 사람이 모이는 장소라면 무조건 피하고 봐야 했기에 전시회나 콘서트, 스포츠 경기 등도 즐기기가 어려웠다. 모든 분야가 불황을 거듭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가구 업체는 겉으로는 차마 드러내지 못했지만 속으로 만세를 부른 모양이었다. 이전에는 집이 날이 어두워진 후 들어와 잠을 청하는 장소에 불과했다. 강제적이나마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나날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집의 소중함에 눈을 떴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속성을 집에 부여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알게 모르게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보는 눈을 길러 왔다. 가구와 관련된 박람회 따위를 직접 관람하기도 물론 했지만, 꼭 그게 아니어도 일상에서 수시로 카페를 드나드는 경험 등을 통해 안목을 길렀다. 거실을 마치 카페처럼 꾸며 필요에 따라 개인활동과 집단활동을 병행할 수 있게끔 하는 시도가 도처에서 행해졌다. 아주 고급스러운 빌라도 아니요, 내가 거주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아파트이거나 원룸임에서도 이와 같은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인스타그램을 비롯하여 각종 SNS에서 손쉽게 볼 수 있는 사진들은 마치 잘 조성된 하나의 작품인양 많은 이들의 감탄사를 불러 일으킨다.

현재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저자는 시간 여행에도 아낌없이 투자하는 모습을 보였다. 온돌의 시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그저 우리나라의 전통이라고만 여겨 왔는데, 저자는 이의 확산을 기후변화와 연결지었다. 전세계적으로 끔찍한 질병이 확산되고, 이 땅 역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던 그 시절에 지구는 비정상적이라 일컬을 정도로 낮은 온도를 기록하였다. 날이 얼어붙으면 사람만 오들오들 떠는 게 아니라 작물의 성장이 멎는다. 춥고 배고프고, 참으로 견디기 힘든 그 시절에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온돌문화가 널리 퍼져 나갔다. 의도치 않은 주거 환경에의 혁명은 그렇게 시작됐다. 변화는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는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다. 좌식보다 입식 문화를 편히 여기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취향이 변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방바닥에 앉아 쇼파를 등받이 삼아 기대고는 한다.

서양의 침실 문화에 대한 고찰 또한 돋보였다. 예전의 침실은 오늘날과 달랐다. 손님들이 모여 만찬을 즐기는 등의 행위가 침실에서도 행해졌으며, 심지어 잠을 자는 순간에도 주변에 불청객(?)들이 넘쳤다. 상상조차 버거울 정도로 끔찍하지만 당대의 현실이 그러했기에 침실은 커야만 했다. 살롱 문화가 도입되면서 사교장이자 응접실로서의 침실은 생명력을 상실했다. 부르주아 가정을 필두로 1인 1침대가 도입되는 과정은 서양의 문화를 알지 못하면 결코 이해가 쉽지 않았다.

오늘날 집은 모든 욕망의 집결지이자 제 자신을 부각시키는데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처럼 여겨지고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집 이야기를 접하며 무리를 해서라도 제 집 장만에 열을 올리고, 한 채로는 부족해 투기를 거듭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절로 떠올랐다. 꼭 필요한 물건만을 소유하며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길 꿈꾸었던 소로와 달리 우리에게는 미니멀 라이프조차도 누군가에게 자신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건 아닌지 싶었다. 하긴, 시대가 다르니까. 뼛속까지 자본주의 정신을 익힌 현대인에게 소로와 같은 삶을 사는 건 불가능일지도.

분명 가구 이야기를 읽었는데 시대가 읽혔고 문화가 읽혔다. 나의 집, 나의 방에 놓인 가구들은 나에 대해 무얼 말해주고 있을지. 잘 가꾸고 사는 게 그저 깔끔한 성격만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다. 내가 아는 것 이상으로 나에 대해 말해주는 게 세상엔 참 많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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