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도서]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지나고 나서 생각하길 학창 시절이 좋았다. 생존 전선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음을 당시에는 몰랐다. 가난했더라도 누리려면 그 순간이 적절했다. 스스로 돈을 벌어 내 주머니를 채우기 시작하면서 난 오히려 각박함의 노예가 됐다. 주변의 풍성함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문화는 나와는 동떨어진 무언가인양 여겨졌다. 일상이 일상 같지가 않아서 한숨으로 일관한다. 이로부터 벗어나면 삶 아닌 죽음일진데도 다른 곳에 나와 꼭 맞는 옷이 존재하진 않으려나 곁눈질을 하곤 한다.

저자는 오랜 기간 프랑스에 머물렀다. 비행기로도 꽤 긴 시간을 이동한 끝에 닿을 수 있는 나라다. 물리적 거리가 상당한 만큼 모든 게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곳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오가는 사람들의 생김새, 옷차림, 사용하는 언어, 심지어 얼굴에 서린 표정까지도 어쩌면 우리의 것과는 전혀 같지가 않을 수 있다. 일종의 유예 기간이었을지도 모를 그 곳에서 접한 것을 풀어낸 책이었다. 나에겐 매우 낯선 공연예술이, 낯섦에도 동경의 대상이었던 프랑스에 속한 것들이 그렇게 내 눈 앞에 쏟아졌다. 주어 담으려다가 흠짓 놀란다. 전혀 들어본 바 없는 이름. 낯설다는 표현이 내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만 같아 말을 아끼게 된다. 부끄럽게도 흐름을 완벽히 따르지 못했다. 이야기들은 단편적으로 다가왔다가 멀어지길 반복했는데, 모습이 마치 날 놀리는 것만 같았다.

숱한 에피소드 중 와 닿았던 부분을 몇 언급한다. 재불 독립운동가. 이런 정체성은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으며 홍재하라는 인물을 내 마음에 들인 적 또한 전혀 없었다. 나라 잃은 국민이 끌어안아야 하는 건 비단 설움만이 아니다. 실존함에도 어디에도 존재해선 아니 되는 상황이 빚어내는 간극. 요즘 많이들 사용하는 용어로 일컫자면 디아스포라. 그의 자녀에게 프랑스 땅은 결코 낯선 곳이 아닐 터이지만, 직접 인종 차별 등을 당하지 않았을지라도 완벽한 프랑스인으로서의 삶은 대대손손 허락되지 않은 듯했다.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한국어 편지를 소중히 간직한 아들 장 자크. 한국인을, 한국어를 아는 사람을 만날 적이면 그 편지를 펼쳐 한 존재를 이해하려 드는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서글펐다. 너무도 쉬이 사라지는 게 존재임을 저자는 이어 말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사람들, 극장. 기억은 선명한데, 그 기억에 대해 말해줄 것들은 부재다. 아슬아슬하게 실존을 건드리는 작품이라면 필히 아플 것이므로 차라리 아니 보리라.

장 끌로드아저씨의 일화 또한 마음을 적셨다. 그의 수첩에 기록으로 남았고 형언하기 어려운 의미로 각인됐다. 배우들의 주름살까지도 세세히 살필 수 있는 정면 자리를 고수해야만 예술을 제대로 즐긴다는 평을 들을 수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장 끌로드아저씨가 내민 표는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비스듬히 사선을 그으며 무대를 응시하면 무엇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고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데, 굳이 경험하려 든 적이 난 있었던가. 기피해야만 하는 무언가를 친절로 받아들여야 할 때의 마음은 다분히 씁쓸할까, 그마저도 고마울까. 친분을 쌓기에는 모호해 보였으나 기꺼이 시간보다 일찍 몸을 움직였다. 그만을 위한 의자를 슬쩍 앞으로 밀어 두는 센스는 앞서 행한 배려에 대한 보답이었다. 프랑스여서 가능했던 걸까. 마지막의 순간마저도 오가는 정은 표현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도 마음과 마음은 맞닿았다.

현실 아닌 공연이어서, 무대 위에서만 벌어져서 다행인 것들도 많았다. 아니, 그래야만 하는데 굳이 세상에 존재한 것들은 또 어찌나 많았던지. 테러, 여성을 향한 공격. 시대착오라 말하지만 현재도 무심히 행해지는 일들이 버젓이 예술 안에 담겼다. 그 시절엔 보편의 범주 안에 속했던 것이겠지. 부디 이 문장은 과거형으로 구사할 수 있기를. 바람은 아직 실현되지 않아 바람일 수 있다는 문장이 가슴을 때린다. 아무도 구하지 못한 2014년이 우리에게 있다면 니하오외침 속에 숨겨진 칼날이 프랑스엔 있었다. 예술과 현실의 경계는 모호했으며, 둘 다 아픔이자 비극이었다. 존재를 자각하는 일이 타자여서인지 프랑스에선 보다 명료했다는 거. 알지 못하는 작품의 늪을 허우적댄 끝에 나는 배웠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