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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산모 수첩

[도서] 가짜 산모 수첩

야기 에미 저/윤지나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한 항공사 승무원이 거짓 출생신고를 한 뒤 4년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번갈아 쓰며 수천만 원의 휴직급여까지 탔습니다. 하지만, 서류상의 아이가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서 7년간의 출산 자작극은 끝이 났습니다. ○○○ 기자가 보도합니다."

 

몇 해 전 이와 같은 소식을 접했을 때 대단한 사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중시되고 이를 위한 휴직이 보편화 되었다고는 하나 장기간 여러 사람을 감쪽같이 속이기 위해서는 무척이나 치밀해야만 했을 터이다. 뉴스에 보도 됐다는 건 이런 일이 잦지는 않기 때문일 거다. 대담한 사기극(!)이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벌어졌다. 현실 아닌 소설이었지만 충분히 있을 법하다는 생각에 머리를 끄덕였다.

 

주인공인 시바타는 34살의 직장인이다. 우리보다 더 전형적인 여성상이 사회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나라가 일본이라더니, 시바타의 사회생활은 녹록지가 않다. 도저히 아니다 싶은 곳에서 벗어났으나 새로 잡은 직장인도 천국은 아니었다. 직원들의 얼굴에 생기가 없는 건 표면적인 거에 불과했다. 시바타보다 앞서 근무한 여성이 두 명 가량 있었는데 모두 비정규직이었다. 그들의 사정도 비슷했을 듯. 시바타는 손님을 위한 차를 준비하거나 컵을 씻는 일까지 도맡았다. 그가 집중해 일하고 있는 와중에도 다들 그를 찾았다. 반복되는 부조리에 지친 시바타의 선택은 놀라웠다. 어느 누가 ‘임신’을 카드로 활용하려 든단 말인가! 말 한마디에 불과했지만 효과는 컸다. 기존에는 시바타의 이름을 부르면 족했다면 이젠 어설프지만 직접 하거나 아예 포기했다. 대놓고 임산부에게 일을 시키는 건 왠지 자신들의 품위 유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이라도 한 걸까?

 

야근을 않아 벌이가 줄어든 대신 오후 5시 이후의 시간이 늘었다. 꿈도 못 꿀 이른 퇴근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 상당하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억울함을 느꼈지만 순간에 불과했다. 그 동안 보지 못한 영화를 보고, 피곤한 나머지 건너뛰기 바빴던 식사도 챙기기 시작했다. 나를 위한 한 끼를 만들고자 손수 장을 보는 게 특권이 아님에도 오랜 기간 그로서는 누리지 못한 바였다. 밤이 너무 길다는 말이 나를 자극했다. 집에 닿을 무렵이면 진이 빠져 졸다 깨다를 반복하는 직장인들이라면 본능 마냥 부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그는 임산부였다. 모두를 기만하기 위해서는 완벽해야만 한다. 존재치도 않을 아이의 이름을 짓고, 임산부들을 위한 에어로빅 과정을 수강한다. 남산만한 배를 위풍당당하게 드러낸 사람들 틈에 선 그의 모습이 과연 자연스러웠을지. 굳이 저렇게까지 적진(?)으로 뛰어들어야만 하나 싶었다. 사람들이 임신으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할 때 그도 뭐가 됐건 한 마디 건네야 했다. 개월수에 비해 너무도 일자인 그의 배가 혹 모두의 의구심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까. 급기야 초음파 검사를 한다며 병원을 찾기까지 했다. 임산부를 위한 배지 착용은 이 정도면 애교 수준에 불과하다.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고이는 게 아무래도 긴장했던 듯하다.

 

저자는 시바타의 기이한 선택은 개인의 일탈로 규정짓길 거부한다. 초반에는 해방감에 맞추어졌던 초점이 어느 순간부터는 임신의 과정을 성실히 밟아 나가는 시바타에게로 옮겨 간다. 다른 임산부들이라면 존재할 아이가 시바타에겐 없다. 시바타의 모든 행동은 시바타 자신을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사회가 여성을 어찌 바라보는지, 더 나아가 엄마로서 살아가길 결심한 이들의 고충이 무언지, 임산부 아닌 임산부였기에 시바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가능하다면 한 번 더를 외치는 그의 모습이 나에겐 마냥 우스꽝스럽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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