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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다

[도서] 나는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다

수 블랙 저/조진경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던데, 사람으로 태어나 이름조차 남기지 못할 평범한 내 삶을 생각하니 왠지 서글퍼지려 한다. 최근엔 잊혀지는 것도 하나의 권리로서 언급되곤 있다지만 한 편으로는 작은 점이라도 찍고 싶은 욕심이 이는 게 사실이다. 그럴지라도 원치 않는 방향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다>에 등장한 사례의 주인공이 되는 일은 필히 피해야 할 것이다.

법의인류학자라는 직업은 왠지 낯설다. 세상의 수많은 직업 중 나에게 익숙한 게 과연 몇이나 될지. 읽다 보니 프로파일러가 생각났고, 예전에 읽었던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라는 책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회 정의를 구현한다고 하면 굉장히 멋지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그게 죽은 이의 몸을 들추는 행위로 구체화 된다면 마다할 이가 많을 것이다. 코소보에서 전쟁 범죄 수사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사건과 사고에서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일에 앞장서온 저자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그가 지닌 해부학적인 지식이었다. 책은 인체의 신비를 보여주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 마냥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양한 부위를 다루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자연으로 돌아가는 피부 및 각종 조직과 뼈는 다르다. 사망 사건에 가담한 이들이 제 범죄 행위를 잊고 살아갈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존재감을 과시하는 게 바로 뼈였다. 저자와 동료들은 발견된 뼈를 통해 망자의 인종, 성별, 연령대를 추정했다. 더 나아가 망자가 사망에 이르게 된 원인 또한 뼈에 새겨진 흔적으로부터 읽어냈다.

처음에 다루어진 게 일명 해골’, 즉 머리 뼈 부분이라 그런지 이야기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내게 선사했다. 읽기가 무섭게 한국전쟁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의 유골 장면이 기억나기도 했다. 두개골 어딘가에 남은 총성이 이 민족이 맞닿드려야만 했던 비극을 상징하는 듯했다. 다행이도 이 책에서 저자가 언급한 사례는 정치적 군사적 차원에서 행해진 학살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물론 자연사 아닌 모든 죽음은 비극일 테지만 말이다. 신원 파악에 가장 결정적인 증거로 활용될 수 있는 머리 부분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잦은 모양이었다. 범인이 나름의 의도 하에 일부러 머리 부분을 잘라내 다른 장소에 버리기도 했으며, 때론 여우 등 야생 동물의 소행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전자의 경우라면 수사팀과 범인 간의 두뇌 싸움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지 여부가 판가름 난다. 모든 수사가 성공하진 못했겠지만, 발견된 신체의 다른 부위들이 말해주는 바를 면밀히 살핀 끝에 죽은 자의 억울함을 해소해준 사례를 읽으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지금은 행해질 리 없을 교수형이 신체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도 엿볼 수 있었다. 당대 악명 높았던 이가 교수형으로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시신이 어찌 처리됐는지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런 일에도 저자의 힘이 필요할 거라곤 생각을 못했는데, 아쉽게도(?) 사이먼 프레이저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사후 25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일을 망자가 과연 즐길지. 교활했던 프레이저는 왠지 그럴 듯도 했다.

뼈가 비극을 기억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을 해리스선 이야기는 왠지 가슴 아팠다. 고작 10대 초반의 소년이 스스로 목을 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소년의 가정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으므로 죽음의 원인을 파악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웠는데, 저자는 신체에 가해진 학대의 흔적을 찾다가 해리스선을 발견했다. 뼈가 순간적으로 정상적인 성장을 멈추며 생긴다는 해리스선은 소년이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한 두려움과 공포 등이 얼마나 컸는지를 암시해주는 듯했다. 살면서 이와 같은 흔적을 온몸에 새기며 살아가야 하는 이들도 상당수일 것이다. 피해자가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사회에서 필요한 건 과연 무엇일지.

딱히 특징이 없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책을 읽으며 내 신체 구석구석을 알게 모르게 훑어 보게 됐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없는 게 아니라는 점, 현재도 알게 모르게 내 삶이 내 뼈에 새겨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숭고함마저 느꼈다. 삶은 그냥 사라지는 거품과도 같은 게 결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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