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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꿀벌의 세계

[도서] 경이로운 꿀벌의 세계

위르겐 타우츠 저/헬가 R. 하일만 사진/유영미 역/최재천 감수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흔히들 생태계를 일컬어 약육강식의 질서가 지배하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인간 아닌 다른 종에서도 제 어미가 새끼를 돌보고 무리를 이루어 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인간처럼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이루고 상부상조하면서 지내는 종은 그리 많지 않은 탓이다. 안타깝게도 인간마저 경쟁 논리에 길들여진 나머지 좀더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서글픔에 눈을 뜨고 있는 요즘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협동하는 문화는 정녕 너무나도 특별한 나머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난 것이란 말인가! 생김새부터가 전혀 다른 꿀벌을 이 즈음에서 언급하는 것은 다소 어울리지 않는 것도 같다. 그런데 19세기 오하네스 메링이라는 사람은 꿀벌을 가리켜 척추동물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무얼 보아 꿀벌을 척추동물로 분류한 것인지, 우리로선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그런데 이번엔 더 충격적인 주장이 들려온다. 글쎄, 꿀벌이 포유동물이란다. 한 사람이 이상한 말을 하면 그건 헛소리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연이어 비슷한 주장이 계속된다면 무언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음을 우리로선 의심해 보아야 한다.

꿀벌이라고 했을 때 난 어린 시절 따끔함에 그만 울어 버렸던 사건만을 떠올릴 따름이다. 육각형 모양의 벌집에 가득 들어찬 꿀도 생각이 조금은 난다. 양봉업자가 아닌 이상 꿀벌에 대해 그 이상의 관심을 가질 일이 나로서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꽤나 흥미로운 사실들이 담겨 있었다. 꿀벌 한 마리만 놓고 보았을 땐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삶(?)에 저자는 주목했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는 게 생명체로서는 최선의 길이다. 그런데 꿀벌은 그리하지 않았다. 생식에 관여할 수 있는 여왕벌의 수는 너무도 조금이었고, 그에 비해 전혀 쓸모 없어 보이는 수벌들은 넘쳐 났다. 비록 짝짓기 후에 생명을 다한다곤 하나 그래도 수벌은 나은 편이었다. 자기 대에서 끝나는 일벌의 운명이야말로 가혹하기 그지 없기에... 이러한 바를 이해하기 위해 저자는 '초개체'라는 말을 한다. 미시적인 관점을 취하면 이해되지 않던 바도 종 전체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생존을 위해 그것이 최선임을 알게 되는... 그렇다면 꿀벌이라는 종은 집단 차원의 생존을 위해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무언가가 유전자에 각인이라고 된 것일까?
사실 꿀벌의 특이함은 예전부터 널리 회자되어진 바이다. 얼핏 보면 그저 날아가기 위해 날개를 바삐 움직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 듯한 게 꿀벌의 날개짓이다. 그러나 그 궤적을 오늘날 학자들은 꿀벌 특유의 의사소통으로 해석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벌집을 만들기 위한 개체 하나하나의 움직임, 애벌레를  기르는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나름 과학적인 온도조절 등은 꿀벌 한 마리만을 연구해서는 결코 이해하기 힘든 바이다.

오늘날의 각박함은 결코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600만개나 되던 미국의 벌통이 이제는 (2005년 기준) 240만개 밖에 되지 않는단다. 수많은 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그 빈자리는 새로운 종이 메워 왔다. 그러나 꿀벌의 사라짐은 단순히 꿀을 섭취하지 못하는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위기로 몰고 갈 것이라고 많은 이들은 우려를 쏟아 낸다. 생물학적인 연쇄 작용에 대해서까지 난 깊이 있게 알지 못한다. 다만, 협동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종 차원에서 받아들인 꿀벌의 사라짐은 그러잖아도 메마른 세상이 더욱 거칠어지는 지름길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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