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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도서]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저/이정민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오늘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도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하물며 15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하려 들었다가는 맥이 풀리고야 말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고, 그런 인간의 영역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일종의 무리수를 뒀다. 무려 15년 전에 발생한 사건들을 다루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사건 간의 연결 고리를 찾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연관된 인물들조차도 이를 알지 못하는 상황인데, 제3 자인 독자로서는 더더욱 난해한 감정을 느끼는 게 당연했다. 진실을 알고 난 지금도 실은 어안이 벙벙하다. 대체 내가 무슨 사건을 접한 건지 싶고, 저자의 추리가 과연 가능은 한 것인가 싶은 의구심도 인다. 15년 전이라면 현재는 당연시 여겨질 많은 것들이 아예 존재조차 않았을 테고, 증거라며 존재했던 것들 중 대다수가 시간을 머금은 채 소멸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상상과 추측에 의존해 이토록 거대한 실체를 그리는 건 무책임한 게 아닐지. 반감이 들었다. 정확히는, 저자의 대담함이 부러웠다.

여러 사건이 각각 등장한다. 2004년, 평범한데다 화목하기까지 한 집안에서 갑자기 아이가 사라진다. 당시는 여성을 여럿 살해하고 도주중인 용의자가 있었는데, 차에 치여 숨진 아들이 사건의 수사를 방해했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내 아들도 피해자인데 왜 세상이 몰라주는지, 부모로서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했다. 죽었다는 사실 외에는 그 무엇도 분명치가 않았다. 야심한 시각에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다는 점부터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이는 외로웠다. 내가 아이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아이는 나를, 이 집안을 숨막혀 했다. 15년이라는 시간도 끊임없이 솟구치는 죄책감을 다스리기엔 충분치가 못했다.

또 하나의 사건은 2019년 일어난 남편의 실종이다. 처음 시신으로 발견된 건 고미네 아카리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는데, 실종된 남편은 그녀와 바람을 피웠을 것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우발적으로 사귀던 여성을 살해하고 도주한 걸까? 평범한 집안 사정이 왠지 이와 같은 상상은 금물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시어머니의 눈에 며느리는 탐탁지 못했지만 젊은 사람치고는 순종적이었기에 딱히 트집 잡을 구석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아들이 좋다고 했다. 그런 며느리가 아들이 사라졌는데도 자신에겐 연락조차 않았다. 아들이 왜 집에 안 들어왔는지, 어디로 출장을 간다고 하였는지 등을 캐어물었지만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는 믿음은 주변의 웅성댐을 따라 일렁였다. 마치 모래 위에 쌓아 올린 성처럼 금이 갔고, 어느 순간부터는 며느리가 제 아들을 죽인 범인이라는 확신마저 들끓었다.

사건에 뛰어드는 미쓰야는 괴짜와도 같다. 눈 앞에 닥친 사건의 해결과는 별반 상관없는 듯한 장소를 방문하질 않나, 함께 조를 이루어 수사를 진행 중인 가쿠토와 자신이 취득한 정보를 공유치도 않는다. 뜬구름을 잡는 것만 같은 행동이 연신 이어지는 듯한 시점에 저자는 미쓰야가 지난날 겪었던 아픔을 던진다. 살해당한 어머니의 모습을 처음 발견한 아이. 그 날의 끔찍한 기억을 쉬이 지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그 탓인지 남들은 인식조차 못하는 걸 포착하고 간직하는 측면에서 그는 놀라운 능력을 선보인다. 이면에 깃든 슬픔이 범접조차 힘겨울 만치 거대하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는 그를 마냥 부러워하지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한다. 아니, 이는 미쓰야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들의 육신은 소멸했지만 죽음이 사라짐을 뜻하진 않는다는 신념으로 지금껏 버틴 미즈노 이즈미나 실종된 아들을 찾고자 자신만의 방식을 구사하는 모모이 지에 등도 우리는 결코 명확히 이해치 못할 거다. 해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만을 가지고 “이해한다”고 말하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므로.

순식간에 읽었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마냥 가볍게만 여겨왔기에 가능했던 일인데, 남은 여운의 무게마저 가볍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 주변에도 알게 모르게 저마다의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넘칠 것이다. 차라리 모르므로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걸지도. 완벽한 공감은 나를 무너뜨리고야 말 거라고 생각하니, 내가 지닌 허점에 감사하게 된다. 적당히 수긍하고, 부족하다 싶을 때 물러나고. 당신이 서러움에 몸을 떨 때 나는 비굴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껏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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