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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살인사건

[도서] 경성살인사건

김복준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그로테스크(grotesque).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못해 괴기하고 흉측스럽기까지 한 무언가를 뜻하는 이 말이 100년 전 우리 사회를 지칭하기에 적합한지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일단 조선이나 대한제국, 대한민국 등이 아닌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 하에 놓인 거 자체를 그로테스크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보다 더 이상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무단통치의 강압성에 연이어 발생한 봉기. 이로부터 무언가를 깨달은 듯 통치 질서가 문화통치로 바뀐 게 1920년대의 일이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아니지만 앞선 시대의 숨 막히는 질서와는 사뭇 다른 시대라 할 법한 1920-30년대에 <경성 살인사건>에 수록된 사건들이 벌어졌다. 우려대로 수사는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다. 조선인이라서, 사회적 신분이 미천해서 오로지 자백만을 가지고도 구형이 이루어졌다. 충분히 미심쩍은 일본인에 대해서는 반대로 관대했던 게 그 시절의 일이었단 걸 책을 읽는 내내 실감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책의 내용을 살짝 언급해 볼까 한다.

가장 낯이 익은 사건은 ‘사이비 종교 백백교 사건’이었다. 아무래도 얼마 전 역사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조명을 한 덕 같다.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흰색 옷을 입을 것을 주문한 사실만 놓고 본다면 다분히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을 듯하다. 약간이나마 동학의 영향도 받았다고 하니 바른 길을 걸었으면 독립운동 대열에 힘을 보탤 수도 있었을 거 같다. 가정이 무색하게도 백백교 교주 집안은 뼈대 있는(?) 사이비 종교 집안이었다. 아버지와 아들 셋이 모두 저마다의 교단을 움켜쥔 채 뒤흔들었으니, 전재산을 헌납하고 심지어 제 핏줄을 죽이는 일이 이 종교 안에선 빈번하게 일어났다. 심히 이상하단 낌새를 눈치 채면 오히려 목숨을 잃는 상황. 거짓으로라도 신앙을 고백하는 게 생존을 위해서는 최선의 전략이었을 것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순서를 차지하고 있는 마리아 살인사건과 독살 미녀 김정필 사건은 그야말로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경우에 해당했다. 피해자가 명확하고, 강도 높은 수사가 필요해 보이는 인물이 분명하지만 정작 죄를 지은 사람은 순조로이 일상을 영위했다. 자신에겐 죄가 없다는 증언, 이를 뒷받침할 유력한 증거가 제기되어도 주목받는 건 따로 있었으니, 다름 아닌 외모였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향한 동조의 시선이 마냥 긍정적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사건의 본질은 논의를 거듭할수록 흐려졌고, 그 와중에도 시간은 흘렀다. 진실이 밝혀지기까지의 오랜 시간은 과연 누가 어떠한 방식으로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정당화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런데 이판능 살인사건은 적잖은 동정심을 불러 일으켰다. 열악한 지위에 놓인 전차 조종수, 그것도 조선인. 사람들은 이판능 개인의 단죄 여부보다 평소 도처에서 난무해온 조선인 차별로 인하여 쌓인 감정을 토로하는 일에 목을 맸다. 일제 또한 이 사건을 다루는데 조심스러움을 표했다. 살해라는 방식이 잘못된 것만은 분명하나 이 인물이 그와 같은 극한 행동에 도달하기까지 감내해야 했을 부당함이 상당했으리라는 점 또한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그는 시대를 잘 타고 났고, 그 측면에선 분명 운이 좋았다.

조선인이라고 전적으로 옳거나 선했을 리 없다. 살해 행위에 직접 가담했는지 여부에선 다소 헷갈렸지만, 오천일 살부 사건은 여러 모로 씁쓸했다. 친부의 어마어마한 재산이 일련의 흐름을 불러 일으킨 점, 아버지의 생명보험금에 아들이 눈독을 들인 점, 증인이라는 자가 수시로 증언을 뒤집으며 여럿에게 불편함을 선사한 점, 할아버지를 죽인 아버지에겐 상속권이 없다며 할아버지의 재산이 자신에게 귀속된다며 손자가 나선 점. 예나 지금이나 돈이 너무 많으면 분란의 씨앗으로 작용한다는 말이 사실인 건지, 이 사건은 오늘날 벌어졌다고 해도 하등 이상함이 없어 보였다.

사람이 쉬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 사건을 접하며 깨달았다.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행동을 하기 마련인데, 그 행동에는 절대 취해서는 아니 되는 극한 방식도 포함될 때가 잦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오로지 법, 정의 등의 잣대만이 힘을 발휘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진실은 언제나 밝혀지는 게 아니고, 혹 드러나더라도 참으로 지난한 과정을 거친 끝에야 드러난다. 100년 전 조선 사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어쩌면 ‘그로테스크’하진 않은지 되묻고 싶은 시간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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