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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먼

[도서] 나는, 휴먼

주디스 휴먼,크리스틴 조이너 저/김채원,문영민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처음에는 한 개인의 이야기라 생각하며 읽었다. 일정 연령대에 이른 이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쓴 자서전 같은 거. 그는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신체를 지녔는데,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은 탓이라 하였다. 혼자 움직이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동네에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는 일에는 큰 지장을 겪지 않았다. 누구도 그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며, 어떠한 형태가 됐건 무리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던 덕이 크다. 학교에 입학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을 때부터 차이는 빚어지기 시작했다. 그에게 드리워진 운명은 일상에서 겪는 보행 불가에 따른 어려움보다도 더욱 어두웠다. 4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다른 이들처럼 학교에 드나들 수 있게 됐으나, 이 또한 일반 아이들이 받는 교육과는 달랐다. 장애를 지닌 아이들만을 별도의 공간에 모아 놓고 하는 수업은 시간이 짧았고, 가르침의 내용 또한 상이했다. 그래도 좋았다고,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했다고 저자는 회상했다.

그의 삶은 미국 장애인 인권 운동의 역사와도 같았다. 다른 이들과 같은 무한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필히 대학 진학을 하고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그의 부모가 보인 탁월한 의견에 힘입어 그는 끊임없이 도전했다. 1970년대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미국 사회도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서는 불모지와도 같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전공을 선택할 때 개인의 적성이나 재능 따위는 고려되지 않는 점, 장애를 이유로 아이들 앞에 설 수 없게 되는 등의 일이 그의 인생에선 연달아 전개됐다. 지레 겁을 먹거나 좌절할 수도 있을 테지만, 그는 목소리를 냈다. 처한 상황이 부당하다고,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귀 기울여 이를 경청하는 이는 드물었지만 약간의 환기가 이루어졌다. 제자리걸음 혹은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것만 같은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분명 그는 전진하고 있었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건 재활법 504조 시행 규정 서명을 촉진한 시위 부분이었다. 정치인들은 헛된 약속 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명 버티기 전법을 구사했다. 시간이 지나면 그만이라는 식의 태도에 그는 분노했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시위에 나섰다. 너무 과격하다는 평이 따르기도 했고, 모두가 그의 방식에 동의했던 건 아니다. 시일이 흐름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지 않자 처음의 결의를 상실하고 무리를 떠나는 이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 스스로가 언급했듯 혼자 행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누군가가 이탈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이들이 힘을 보탰다. 과정이 민주적이었다는 건 의사소통의 모습에서 드러났다. 누군가는 수어로, 누군가는 보조기기의 도움을 받아 차분히 논리를 전개해 나갔다. 원하는 바를 표현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한 순간도 있었을 터이나 모두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 안에서 마음이 통했고 신뢰가 싹텄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또한 붙었다. 마침내 원하는 결과물의 도출이 이루어졌을 때 저자는 성장했다. 그건 그 자리에 있던 모두, 더 나아가 미 대륙 전역의 장애인들의 승리였다.

원하던 바를 이루고 나면 목표 의식을 상실하기 쉽다. 하나의 제도가 마련됐다 하여 하루 아침에 사회가 180도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는 쉼없이 움직였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세계 은행에서, 오바마 행정부에서 그를 필요로 했다. 일터를 옮길 때마다 지역 사회에 형성됐던 많은 지지망으로부터 멀어져야 했기에 주저하는 마음도 있었다. 어찌 보면 포기로 해석될 수도 있는 선택을 행했지만, 하나를 내려놓음으로써 더 큰 것들을 얻었다.

함께한 많은 이들이 장애인이었다는 점이 신선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장애인과 마주하는 일이 드물기에, 미국이라는 국가가 우리보다 얼마나 더 앞서 있는지에 대해 궁금했다. 한 편으로는 ‘장애인’이라는 단어에 치우치지 말아야겠단 생각도 했다. 이를 다른 단어로 교체해도 저자의 이야기는 충분히 성립 가능해 보였다. 나의 어떠한 특성이 나에게서 교육의 기회를 앗아가고 학습 능력이 없다는 평가를 정당화한다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지라도 여전히 이로 인해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인 이들이 이 땅엔 상당수 존재할 것이다. 그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나는, 휴먼’ 이라는 숭고한 선언을 할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해 본다. 공상 아닌 얼마든지 현실로 존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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