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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차가운 일상

[도서] 나의 차가운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저/권영주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4점

얼마 전 일이다. 같이 근무를 서던 이가 나에게 물었다. 예전부터 친했던 이가 승진을 해 팀장, 과장이 되면 아무래도 예전과는 관계가 달라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나는 시원스레 답하지 못했다. ‘친하다’의 정의가 무언지를 되묻고 싶었다. 과연 상대가 나를 아는지가 궁금했으며, 역으로 내가 그를 안다고 말해도 괜찮은지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다. 우린 서로에 대해 과연 무얼 알고 있는가! ‘나의 차가운 일상’이라 제목 붙은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당시가 떠올랐다. 이야기 자체도 오묘했지만, 사건의 중심에 본의 아니게 놓이고야 마는 주인공의 입장이 나로서는 이해하기 난해해서 그랬던 듯하다.

주인공 와카타게 나나미가 이치노세 다에코를 알게 된 건 우연과도 가깝다. 그 전까지 두 인물 사이에 왕래가 있었던 거 같진 않다. 회사를 관둔 주인공이 갑갑한 마음을 떨쳐내고자 떠난 여행, 다에코는 서슴없이 말을 건넸고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대화는 이어졌다. 거기까지였으면 딱 좋았을 텐데, 둘은 한동안 함께 도시를 거닐었으며, 급기야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나기로 약속까지 잡았다. 전화 통화를 통해 “관찰자, 실행자, 지배자”라는 단어를 들었는데, 이 말을 들을 무렵에는 별 의미 없었으나 다에코가 자살을 시도했다가 혼수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모든 건 어긋나고야 말았다. 찜찜했어도 나 같았으면 연을 끊었을 것 같다. 딱 한 차례, 그것도 의도하지 않았던 만남만이 있었을 뿐이므로 신경을 아니 쓴들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공은 나와 달랐다. 유언과도 같은 ‘수기’가 도착해서 더더욱 발을 빼기 힘들었던 건지, 마치 탐정이라도 된 것처럼 스스로 사건을 파헤치고자 작정하고 나섰다.

나에게는 고질병이 하나 있다. 유독 외국인 이름을 낯설어 한다. 일본인도 마찬가지라, 수시로 앞 페이지를 펼쳐가며 해당 인물이 누구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저자는 이런 나를 시험에 들게 하려 작정이라도 한 듯 수시로 미심쩍은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하나하나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괜찮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어진 정보만으로 인물들을 파악해야 하는 나에게는 끊임없이 왜곡된 시선이 드리워졌다. 이게 다 ‘수기’ 덕분이었다. 다에코는 자신의 처지를 가감없이 글로 적었으며, 주인공으로서는 이를 통해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겠다는 강력한 의도를 매순간 드러냈다. 신기하게도 인물들은 수기 속 등장인물과 닮은 구석이 조금씩은 있었다. 주인공의 의심하는 눈초리가 짙어질수록 나 역시도 불편한 심경을 감추기가 어려워졌다. 어느 순간 난 주인공과 연합했고, 우리 사이에서 다에코는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정의 구현을 스스로 이룩하겠다는 강인한 동기가 마냥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는 건 아님을 깨달았다. 선이라고 믿었던 게 어쩌면 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저자는 나에게 심어주었으며, 친절하게도 주인공을 통해 나의 의심이 기괴한 게 아니라는 확신을 주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졸지에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야 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혐의를 벗어가는 과정이 마냥 시원하지만은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매순간 올곧게 바라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주는 충격이 상당히 크기도 했고, 무엇보다 주인공의 자체 수사가 이루어진 와중에도 계속해서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점이 나에겐 마음의 짐처럼 작동했다. 경찰이 공식적으로 수사에 나섰더라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더라면? 잇따른 희생을 막지 못한 채 무기력한 상태를 고수할 수밖에 없단 사실이 나로서는 심히 불편했다.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이제껏 내가 맺어온 많은 관계들 중 친구라고 언급할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다에코 사건에 뛰어든 주인공의 시도는 성공일까, 실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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