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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의 황혼

[도서] 자금성의 황혼

레지널드 존스턴 저/김성배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패자는 말이 없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 되어버리는 그 순간에도 아무런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 채 침묵만을 반복하는 것이 패자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수많은 권력이 그렇게 식어버렸다. 그러나 사람은 사라져도 그들이 남긴 것들까지 모조리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유물이 되고 유적이 되어 후대 사람들에게 중히 여김을 받는다. 다만, 그렇게 남은 것들을 향한 해석은 여전히 승자의 탈을 쓴 채 이루어진다. 제 아무리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더라도 최후의 승자가 아니라면 폄하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역사는 묘하다.

누르하치에 의해 건국된 청나라도 과거가 되어버린 하나의 대국이라 할 수 있다. 한 때 우리나라를 짓밟을 정도로 그들의 힘은 거셌다. 비록 한족이 세운 국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인해 때때로 한족들의 무시를 당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엄연히 만주대륙의 패자였다. 이 책이 쓰여진 그리고 이 책에 의해 다루어지고 있는 시점은 그러나, 이 거대한 국가가 풍전등화(風前燈火)마냥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을 때이다.

저자의 이름은 레지널드 존스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서양인이다. 그가 청나라에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까닭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힘이 그곳까지 미쳤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서양인들의 출몰(?)이 잦지 않았을 그 시점이기에, 그의 청나라 방문은 특이한 사안으로 후대의 주목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희귀하기 때문에 이 두꺼운 책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아니었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이후 일제가 세운 괴뢰국이라 할 수 있는 만주국의 황제로 등극하는 부의의 스승 역할을 그가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서양인의 눈에 황제 부의는 어떠한 사람으로 비추어졌을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 어린 황제를 불쌍하게 그리곤 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왕좌에 올랐고, 이미 뒤틀린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져버린 국가를 구하기엔 턱없이 힘이 부족했던어찌되었건 한 나라를 망국으로 몰고 갔으니 무능력하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을 것이다.

한 개인의 글은 언제나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제 아무리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성을 유지하려 든다손 치더라도, 인물이 인물을 바라보는 것에 있어서는 특히 알게 모르게 제 감정이 포함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존스턴에게 있어서 황제 부의는 마냥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황제로서의 덕목을 갖춘, 그에게 부의는 온 마음을 다해 아껴도 부족함이 없는 소중한 제자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부의를 많은 사람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의 소유자로 묘사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혼란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사로운 감정에 근거에 특정인을 내치진 않은 인물. 조상들이 대대로 가꾸어온 만주대륙의 주인, 비록 지금은 한없이 작은 힘을 가졌지만 부패한 내무부가 혁신을 이루고 난무하는 파벌이 어느 정도 정돈이 되면 언제라도 용으로서의 면모를 보일 인물. 그가 그린 부의는 철없는 아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인물에 대한 묘사 못지 않게 이 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물 흐르듯 마지막을 향해 뻗어나가던 청국의 운명을 다룬 부분이었다. 충정어린 신하들도 분명 존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에서 걷잡을 수 없이 행해지던 부정부패. 누가 누구 편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정도롤 비일비재했던 권력다툼 등을 저자는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이었다. 만일 그가 현대를 살아가는 중국인이었더라면 오늘날 중국인이 제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다분히 반영된 한족 중심주의적인 시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시대의 중심에 서 있었고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만주족 그리고 청나라의 지배 계급에 편향된 시선을 저자는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는 오늘날로서는 보편적인 시각이 아니기에, 한쪽으로 치우친 역사해석에 균형을 가져다줄 수 있는 신선함으로써 내게 다가왔다.

저자는 1938년 사망했다. 그것도 한 무인도를 사들여 그곳에 은거하다가 죽었단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중국 대륙이 보다 더 큰 혼란에 빠지는 것을 그는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래서일까? 책의 말미에서는 다소 희망적인 분위기까지 느껴진다. 만일 그가 조금 더 오래 살아 부의가 만주국의 수반이 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까지 지켜보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때도 이 어린 황제를 긍정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을까? 죽은 자에게는 침묵만이 허락된다. 그렇기에 더더욱, 영면에 든 저자에게 묻고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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