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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도서]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박수용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날이 뜨거웠던 탓인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질끈 감아버린 두 눈은 언제 즈음 다시 세상을 바라보게 될지 기약할 수 없었다. 하지만 너무도 무기력해보이는 이들을 세상은 용맹하다고 했다. 울타리에 갇혀 그저 주어지는 먹이만 받아먹을 것 같은 존재로부터 용감무쌍함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 것만 같았는데 인간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습이 발현될지도 모르겠다. 호랑이는 시시함이다. 요즘 아이들은 차라리 현란한 게임기나 똑똑한 스마트폰 따위를 선호한다. 다듬어지지 아니한 호랑이의 야성적인 모습은 그들의 기억에 아예 없는 것이다.

주변에서 만날 수 없다면 길을 찾아 나서야 하는 법이다. 우습게도 우린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영토로부터 몰아낸 그 존재를 찾아 먼 곳을 찾는다.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방문했을 러시아 영토 어딘가는 아마도 황량했을 것이다. 무너진 사회주의를 대체한 것은 저질 자본주의였다. 유색인종을 향한 공포심을 포장하기 위해 사람들은 뜻 모를 증오를 표출했다. 돈을 달라, 이 땅을 떠나라 등의 난무하는 구호는 호랑이가 인류에게 주는 두려움보다도 더 큰 두려움을 안겼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면 한 번의 만남 이후에는 그들을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책으로만 읽는데도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인간보다 어쩌면 더 인간 같은 그 순수함. 일방적으로 생각했던 잔인한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 새삼스레 호랑이라는 존재를 다시금 바라보게 되었다. 책의 힘이 놀라운 것일까? 아니면 이 책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증거이려나? 어느 쪽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호랑이의 생애에 대해 이 책은 참으로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장소는 우수리 남동부의 라조 지역. 호랑이를 보호하기 위해 인류가 인위적으로 설치한 출입금지 지역이다. 허가를 받아야만 출입이 보장된다 했지만 삶이 버거운 이들은 수시로 이 곳을 들락였다. 엄연한 불법임을 알면서도 신고를 할 수 없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지속되어야만 한다는 일종의 명제 때문이었다. 저자는 한 호랑이 가족을 지켜보았다. 어미의 이름은 블러디 메리. 블러디 메리라는 이름은 사슴이나 멧돼지를 사냥할 때 주변을 온통 피투성이로 만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했다. 피의 메리라니 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일지. 그녀는 날카로웠다. 그렇지만 인간이 먼저 해를 가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녀(?)는 유순하게 행동했다. 어쩌면 인류가 설치해놓은 수많은 덫을 견디어내면서 특유의 조심성을 체득한 탓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그리고 그 새끼들이 자라 마침내 독립에 이르게 되는 과정까지 바라보는 것이 정상이었다. 시간은 한 인간을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시키듯 호랑이도 자라게 하므로. 그렇지만 호락호락하지 못한 것은 인간 세상만이 아니었다. 의도치 않은 죽음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매사 조심스레 행동했던 블러디 메리를 쓰러뜨린 것은 인간이 설치한 무인총이었다. 그녀가 남긴 새끼들도 제 어미가 물려준 운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밀렵용 와이어 줄에 목이 걸려 죽은 천지백과 제 형제의 먹이감이 되어버리고야 만 설백의 새끼. 남은 하나도 로드킬의 저주를 피하지 못했으니 이 가문(!)에 드리워진 비극은 제 아무리 구구절절한 문장을 구사하는 자일지라도 평면의 페이지에 결코 온전히 담아낼 수 없을 터였다. 인간 아닌 호랑이의 죽음 앞에서 난 숙연해졌다. 살고 죽는 것은 살아 있는 자 모두를 서글프게 만드는 법이어서 혹 누구 하나 날 손가락질 하진 않을까를 두려워하면서도 난 울어버리고야 말았다.

하지만 살아 있는 존재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세상의 잔인함에 죽은 자의 시간이 떠밀려가고 어쩌면 그 때문에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듯 연기를 할지라도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매해 개체수가 줄어든다는 호랑이의 시간도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작년과 올해는 또 다를 것이고, 내년에는 어찌 될지 아무도 확답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짧은 생애라 할지라도 호랑이 가족에게도 분명 가족애를 즐기는 순간이 존재할 것이다. 그 행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해야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일 게다. 드넓은 시베리아를 영토삼아 살아가는 이 존재에게 경의를, 삶과 죽음의 순간 모두를 훌륭히 담아낸 작가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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