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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국어사전

[도서] 미친 국어사전

박일환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요즘 아이들도 종이 사전을 넘겨볼까? 컴퓨터 자판이나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더 빠르게 원하는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시대에 사전이 유효할지 조금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물론 인터넷에서도 사전에 수록된 내용들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야 있긴 하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집단지성이 더 큰 힘을 발휘할 때가 많다. 특정 단어의 뜻을 정의함에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서로 묻고 답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보다 현명한 해법을 발견한다. 현 시점에서는 옳지 않은 것도 다수의 동의가 쌓임에 따라 진리가 되어간다. 모든 개념이 상대적이어선 곤란하겠지만 그렇다 하여 권위를 지닌 소수의 의견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도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닌 듯하다. 적어도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관해서 만큼은 그렇다.

저자는 ‘표준국어대사전’을 일컬어 “미친 국어사전”이라 하였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의 운용 방안을 마련했던 ‘집현전’의 전통을 잇고자...(중략)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와 같은 소개 글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그들이 만든 사전에는 숱한 오류가 있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언어는 사회와 시대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의 언어에도 많은 변형이 발생했다. 특히 일본어의 침투가 미친 영향은 실로 거대해 반 세기 이상이 흐른 지금까지도 오염된 우리말을 바로잡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안타깝게도 표준국어대사전은 한자어와 외래어를 사랑한다. 사전이라면 사전답게 누가 접해도 이해 가능하게끔 쉬운 말을 사용해야 함에도 표준국어대사전은 어려운 말을 사용해 그러잖아도 이해가 힘든 말을 더욱 난해하게 만든다. 훌륭한 우리말이 버젓이 존재함에도 이를 사용하는 건 전문가의 권위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피한다. ‘~적(的)’은 왜 그리도 사랑하는지 모르겠으며, 일상생활에서 사용도 않는 프네우마, 롱샹, 페이퍼스컬프처 등의 말을 수록하기도 했다. 이즈음 되면 외래어를 적극 사용하라 권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간다.

말 자체가 애매모호해 무얼 뜻하는지 알 길이 없는 경우도 상당수다. ‘사슬 또는 지방족 고리 탄화수소의 수소를 하이드록시기로 치환한 화합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이는 표준국어대사전이 정의한 ‘알코올’의 뜻 중 하나다. ‘하이드록시기’라는 단어를 단번에 이해하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지 싶다. 그리하여 저자는 ‘하이드록시기’를 찾아보았으나 결과는 깊은 한숨만이 절로 나올 뿐이다. 화학을 전공한 사람이나 이해할 수 있을 법한 내용을 너무도 상세히 적어 놓았는데, 곡를 절래절래 젓고는 말았다.

충분히 많은 사랑, 다양한 계층이 사용하고 있음에도 사전에 수록되지 않거나 특정 지역의 방언 정도로 수록된 말이 수두룩하다. 남성을 보편 가치라 전제해야 성립 가능한 ‘여중생, 여고생, 여대생, 여교사, 여사장’ 등의 단어가 등재돼 있기도 하다. 이들 단어의 ‘여’를 ‘남’으로 대체한 단어는 사전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굳이 여성임을 강조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기라도 한 것일까. ‘노동’을 끝끝내 ‘근로’로 표기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언어가 사회의 주된 이데올로기를 확산하는 하나의 도구라는 생각이 번뜩 일기도 했다.

 

저자는 ‘의지’를 강조했다. 어떤 일이든 의지가 중요하다는 말과 함께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들인 시간을 언급했다. 자신은 직장생활을 만나 일주일에도 몇 차례씩 술잔을 기울였던 자신이 고작 두 달 만에 초고 작성을 마쳤다며, 국립국어원이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 의지가 없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를 물었다.

물론 예전처럼 수시로 사전을 들추진 않는다. 그래도 옛 기억이 있어 책을 읽다 모르는 표현 등이 등장할 때면 난 여전히 사전을 찾는다. 사전에 수록된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왔고, 이해가 안 간다 싶으면 내 무지를 탓했는데 괜한 수고였던가 싶어 씁쓸하다. 매순간 의심이 필요하고, 사전을 이용할 때도 이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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