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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저녁이 저물 때

[도서] 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저/배수아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모든 저녁이 저물 때 Aller Tage Abend (Every day evening)
예니 에르펜베크 Jenny Erpenbeck 배수아
 
한 권이지만 다섯 권의 다섯 인생에 관한 이야기. 모든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나지만, 막간극에서 아주 사소한 우연으로 운명이 바뀌게 되어 죽음을 피하고 살아남아 생을 이어간다. 
소설이 허구지만 그 허구에 또 만일이라는 다른 허구를 더해 '허구의 허구'로 삶을 이어나가는 것처럼 개인의 삶뿐 아니라 역사 또한 오로지 우연에 우연을 더한 것의 총체가 아닌가?
이야기 속의 모든 인물은 이름이 없다. 그, 그녀,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아들 등으로 불린다. 다만 4권의 H 동지, 5권의 호프만 부인 정도가 가장 구체적인 이름이다.
 
1권에서 그녀는 1902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변방인 갈리시아 지방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변방, 현 우크라이나 브로디) 에서 유대인 어머니와 가톨릭교도인 11급 철도 공무원 사이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이웃 폴란드인들에게 도끼로 난도질당해 죽었고 (포그롬 pogrom)
화재, 메뚜기, 거머리, 페스트 또는 곰이나 여우, 뱀, 빈대나 이
할머니는 아버지의 끔찍한 죽음을 딸에게 숨긴 채 딸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가난한 이교도인 가톨릭교도와 결혼시킨다. 하지만 그녀는 생후 8개월에 유아돌연사로 첫 번째 죽음을 맞이하고 어머니는 넋이 나가고 아버지는 집을 나가 미국으로 가버려 가정은 파탄이 난다.
한 사람이 죽은 하루가 저문다고 해서, 모든 저녁이 저무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24
그날 이후 삶은 오직 삶일 뿐이었다. 46
이후 할머니의 가게에서 일하던 어머니는 가게를 찾아온 남자를 따라가고 남자는 일이 끝난 후 여자에게 돈을 건넨다. 이후 계속되는 협박과 모욕, 그리고 몸을 요구하는 남자와 주변인들. 어머니는 집을 나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런데 만약에 창틀에 쌓인 차가운 눈을 아이의 옷 속에 밀어 넣어 아이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면? 이라는 가정하에 다시 이야기는 이어진다.
여자는 한 줌의 눈만으로 손녀를 지옥에서 다시 데리고 나온다.
 
2권에서는 1919년 아버지가 친구의 권유로 빈으로 이사를 오게 되고 할머니도 전쟁을 피해 빈으로 옮겨온다.
여자는 친구가 스페인 독감으로 죽고 남몰래 사랑하던 친구의 약혼녀를 향한 사랑이 거절당하자 할머니 집을 찾지만, 할머니를 만나지 못한 채 거리를 떠돌다가 실연당한 남자를 만나고 둘은 동반 자살을 한다.
한 사람이 죽은 하루가 저문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저녁이 저무는 것은 결코 아니다. 109
만약 할머니를 만났다면, 실연한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3권에서도 그녀는 계속 살아남아 실패한 사랑이 죽음으로 변신하는 대신에 그녀는 자신의 일을 일기장에 적고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제 젊음은, 젊음을 탕진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가 버리기를 기다리고, 이미 너도나도 다 사용한 다음이라 누더기가 되어버린 나이를 먹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기는 정녕 아니었다. 이제 젊음은 자신을 남김없이 던지기 위해 존재했다. 166
그녀는 공산주의자가 되고 1920 공산당 입당하여 남편과 함께 모스크바로 이주하지만, 스탈린 치하에서 남편은 체포되어 생사를 알 수 없고 그녀 또한 체포의 위협 속에 살아가다가 체포되어 수용소로 끌려가 혹독한 추위 속에 죽게 된다.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처음부터 새로이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출신 성분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155
 
하지만 만약 할당된 체포 인원에 포함되지 않아 살아남는다면?
4권에서 그녀는 살아남아 러시아어 번역가, 전쟁 중 라디오 모스크바의 독일어 방송일을 하다가 전후 독일로 이주하여 작가로 명성을 얻게 된다. 남편을 잃은 슬픔에 빠져있던 차 잠깐 만난 러시아 시인과의 사이에 아들을 얻지만, 시인은 떠나가고 홀로 아들을 키운다. 그러다가 60세가 되기도 전에 계단에서 실족하여 또 죽는다.
하지만 그녀가 실족사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살아남아 소련의 몰락과 독일의 통일을 보게 되고 양로원에서 치매 노인들에 둘러싸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빈으로 출장을 간 아들은 어머니를 위한 선물로 빈의 골동품 상회에서 할머니의 유품인 괘종시계와 폭도들이 할아버지에게 던진 돌에 맞아 9권 책등에 상처가 난 괴테 전집을 만나지만 대신 다른 그림을 사 와서 90세 생일을 맞은 어머니에게 선물한다. 그리고 90세 생일 다음 날 죽고 이제 더는 만약은 없고 생은 끝났다.
'한 사람이 죽은 하루가 저문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저녁이 저무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하지만 그녀의 저녁은 이제 저물었다. 모든 저녁이 저물었다.
 
작가의 할머니 '헤다 친너'의 삶이 이 소설 속 주인 H 동지이자 호프만 부인과 많이 닮았다. 그녀 역시 1905년 갈리시아의 렘베르크 출신으로 베를린에서 독일 공산당에 입당 후 작가이자 낭송 배우로 활동하다가 1933년 빈과 프라하를 거쳐 소련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라디오 모스크바 방송극을 썼고, 종전 후 동베를린으로 돌아와 작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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