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역사의 역사
저자 : 유시민
출판사 : 돌베개
로마 제국의 첫번째 황제는 누구인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연도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이런 단순한 사실, 인과관계만이 역사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아직 이런 것들도 많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에 있었던 일을 익히는데만 급급한 것이 내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한국사, 중국사, 일본사, 유럽사, 미국사 등등 여러 책을 봤고 공부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너무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중 에드워드.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이 내 서재에 꽂혀있는 것을 보고 꺼내들었다. 유명한 책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몰랐고 생각보다 얇아서 꺼내 읽었다.
앞부분을 조금 읽었는데 생각보다 쉽진 않았고 역사 서술에 대한 관점이 이 책의 주를 이뤘다. 생각보다 잘 읽히지 않아서 계속 읽을까 접을까 망설이던 중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라는 책도 있어 이 책을 대신 꺼내들었다. 목차를 보니 역사의 기술 방법에 대한 설명이 있을 것 같고 좀 더 읽기 쉬운 필체로 쉬운 내용을 설명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이 책에서도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며 이 부분을 덧붙인걸 보니 책이 어렵긴 한가보다.
서양 역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두 인물이 있다. '역사'라는 책을 쓴 헤로도토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쓴 투키디데스이다. 헤로도토스는 다들 알겠지만 투키디데스는 잘 모를 수도 있다. 사실 나도 책 제목만 알고 있었고 이름은 맨날 잊어버렸었는데 '그리스인 이야기'를 읽으며 제대로 알게 되었다. 난 이 두 인물이 단순하게 처음으로 역사를 기술했기 때문에 중요한 인물로 여겨진다고 생각을 했지만 2500여년 전에 역사서를 저술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사실 검증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이 신기했다. 사실 당시엔 (다른 과거의 역사서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역사를 기록한다는 개념이 뚜렷하지도 않았을텐데 전해오는 이야기를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검증하고 현상을 해석해서 쓴다는 것이 대단하다.
서양에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있다면 동양에는 훨씬 방대하고 정확한 역사를 기록한 '사기'를 기록한 사마천이 있다.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하던 중 궁형을 당했으나 그 후에도 계속 저술하여 끝을 낸 것은 유명한 이야기라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본기 12권, 표 10권, 서 8권, 세가 30권, 열전 70권으로 총 130권에 달하는 거대한 분량의 역사서를 썼고 동양 문화권의 역사서의 기틀을 마련한 셈이니 참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역사를 저술한 이븐 할둔이란 사람은 사실 처음 들어봤다. 당연히 아랍 문화권에도 역사서가 있겠지만, 워낙 아랍 역사는 알지 못해서 역사가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이슬람 문화권은 모하메드가 했던 몇몇 일들과 수니파, 시아파로 나뉜 이유 정도밖에 모른다는걸 다시 깨닳았고 아랍 역사도 공부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꼭 양질의 책을 찾아 공부해봐야겠다.
여기까지는 책의 초반이었다.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역사가가 가져야할 자세를 설명해주는, 역사학자들에 대한 설명이 많이 나왔다. 19세기 독일에 살았던 레오폴트 랑케는 평생을 역사 저술에만 매달렸으며 역사가의 역할을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라고 했다. 카를 마르크스는 역사를 분석하며 과거의 사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일어날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사실 나는 카를 마르크스가 역사를 논하는 곳에 들어가야 하는지도 의문이지만 내 지식이 너무 짧아 모를 수 있고 '공산당 선언'도 읽어보진 않아 얘기할 수 없다. 그 다음은 민족주의 역사학에 대해 설명을 했고, 내가 읽어보려던 '역사란 무엇인가'의 에드워드 카의 경우 랑케와 전혀 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역사 서술은 단순히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지닌 에드워드 카는 결국 역사는 있는 그대로 알 수 없으며 그것을 기록하는 역사가의 생각과 관점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하였는데 매우 공감이 간다. 그와 비슷한 주장을 한 인물로 크로체란 인물이 있는데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 하였으며 역사의 본질은 현재의 눈으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역사를 있는 사실이라고만 생각했고 역사의 승자에 따라 역사의 기록은 바뀐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에드워드 카의 말처럼 역사는 역사가와 떼어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같은 사료를 보고 기록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쓴다면 관점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 없는 대화이다
에드워드.H.카
위의 말처럼 역사는 다순히 과거의 사실을 시험 보듯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발견되는 사실에 따라 상대적으로 계속 바뀔 수 있으며 과거와 대화하듯 끊임없이 옳고 그름을 따지고 그에 따라 배우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따져가며 봐야 할 것 같다.
작가는 민족주의 역사학을 설명하며 우리나라의 일제 시대에 있던 세명의 역사가를 설명하고 있다. '한국 통사'를 쓴 박은식, '조선 상고사'를 쓴 신채호,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를 쓴 백남운 이렇게 세 사람이다. 이 중 '조선 상고사'만 읽어보았다. 읽고 나서 다시 찾아보며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내용도 있다고 하여 마냥 믿음이 없이 넘어갔었는데 이 책의 시작에 작가가 쓴 글을 보고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우리가 옛 역사서를 읽는 것은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남긴 이야기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 51페이지
역사적 사실만 얻으려면 최근 연구자료까지 포함된 한국사 시험 자료가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내가 약 100년 전에 쓰여진 책을 읽으며 사실 여부만 따진 것은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었단 생각이 든다. 신채호 선생님의 굳은 의지와 민족정신을 생각하며 읽었어야했다. 다음에 위에 언급한 책이나 다른 민족주의적 색채를 가진 역사서를 읽게 된다면 단순히 기록된 사실을아는데 그치지 않고 위의 말을 기억해보고 저자의 의도를 고려해보며 읽어야겠다.
뒤쪽은 좀 더 넓은 범위의 역사를 적는 좀 더 최근의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다. 개별 민족이나 왕조, 국가가 아닌 '문명'을 대상으로 역사를 연구한 토인비나 슈펭글러의 설명을 듣고 책을 읽어보고 싶었으나 너무 양이 많다고 하여 읽는 것은 포기해야겠다. 그 후 요즘도 많이 읽고 유명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도 언급하고 있다. '총, 균, 쇠'는 이런 빅히스토리를 처음 읽어봐 너무 흥미를 가지고 읽었고 '사피엔스'는 요즘 읽고 있는 책이다. 20세기 후반 들어서는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역사를 각각의 국가나 왕조로 따지지 않고 인류의 보편적인 발전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는 인류사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이것도 역사로 생각할 수 있다고 보니 새삼 신기했다. '사피엔스'를 읽으며 그런 관점도 생각을 해보아야겠다.
난 '총, 균, 쇠'를 읽고도 단순하게 지식적인 측면만 생각했는데 저자의 통찰력이 새삼 다시 느껴졌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역사 기술에 대해 썼지만 역사가가 취해야 할 자세, 태도를 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에 쓰여있듯 '국가란 무엇인가'의 역사 버전이다. 필체도 좋고 너무 어렵거나 힘든 내용도 요약을 잘 해주어 나처럼 너무 모르는 사람도 잘 읽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저자가 에필로그에 '이름난 왕궁과 유적과 절경 사이를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잠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인증 사진을 찍는 패키지여행과 비슷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패키지 여행이 어디있나? 이정도로 알차게 설명을 듣고 지나간다면 패키지 여행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사 서술의 역사를 기록한 이 책은 역사를 왜 배워야 하고 어떤 자세로 바라보는 것이 좋은지 고민하게 만든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