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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도서]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김초엽 작가의 단편선들을 보면서 항상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매력적인 세계관과 인물, 서사에 비해 간헐적으로 뚝뚝 끊어지는 듯한 느낌, 무언가 덜 마무리된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구 끝의 온실> 에서는 김초엽 작가의 마음에는 단편 소설에 담기엔 너무도 거대한 이야기가 자리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짜임새 있는 구성은 물론, 언뜻 영화적 연출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 구성과 매력적인 인물들이 밤새 책장을 넘기게 만들었다. 

 

<지구 끝의 온실>은 폐허가 된 세계에서의 사랑과 공동체적 믿음, 그리고 약속을 지키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고, '왜 버림받은 우리가 세상을 구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세상을 구하자는 약속을 지키고, 이들간의 사랑과 믿음, 약속은 결국 세상을 구해낸다. 이들이 세계를 구하는 것은 세상을 구하겠다는 거창한 영웅심리 때문이 아니다. 이들은 함께 텃밭을 일구고, 함께 맛없는 커피를 나누어마시고, 함께 폐허에서 쓸만한 물건을 주워오던 내 옆의 이웃이자 친구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 했다.

 

더 큰 공동체인 '세계'라는 안정적인 기반 없이는 그들만의 유토피아가 결코 영원할 수 없다는 걸 그들은 깨닫고 만다. 이들은 '프림 빌리지'에서의 공동체적 경험에 기대어 각자 살아간다. 씨앗이 가득 들어있는 자루를 들고, 세계에 식물을 퍼뜨리자는 약속을 마음 가득 안고서. 프림 빌리지의 멸망 이후로 이들은 서로 만나지 못했으며, 연락조차 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약속을 지킨다. 그리고 그 약속의 이행이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진다.

 

'랑가노의 마녀들'이라 불리우는 나오미, 아마라 자매와는 달리 다른 이들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세계를 구한 구원자들임에도 그들의 공헌을 알아보는 사람 하나 없었다. 이희수 씨의 푸른빛 정원에 매료되었던 아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영은 프림 빌리지가 존재하던 시절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인물이지만, 아영은 프림 빌리지의 추억을 공유한다. 이희수 씨라는 인물을 프리즘 삼아 아영은 프림 빌리지를 살짝 엿본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이희수 씨의 정원에서 푸르게 빛나던 덩굴 식물, 회한과 그리움으로 가득찬 이희수 씨의 모습을 통해 프림 빌리지의 정서를 공유한다. 

 

아영과 이희수 씨의 접점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의 정원 있는 집에 몇 번 방문해 본 것이 전부이고, 과거에 대해 들은 건 고작 천둥이 치던 어느날 밤 단 하루 뿐이었다. 그러나 이희수 씨와의 만남은 아영의 인생에 지워지지 않는 자국으로 남았다. 아영에게 있어서 이희수 씨와의 기억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의 연속일지 모른다.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희수 씨는 어쩌면 아영에게서 프림 빌리지의 아이들을 보았을 것이고, 아영은 그 아이들이 이희수 씨에게서 느꼈던 안정감을 똑같이 공유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프림 빌리지 밖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프림 빌리지스러운' 관계를 구축했다. 

 

아영은 과학자이면서도 신비로운 마을, 프림 빌리지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그에게 과학적이지 않다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아영은 그저 진실을 좇았다. 아영이 좇은 것은 이희수 씨의 그림자였고, 푸른빛의 덩굴이 넘쳐나는 정원이었고, 그들이 긴박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놓지 않았던 희망과 사랑의 약속이었다. 

 

프림 빌리지 주민들은 세계에서 버려지고 또 버려지면서도 세계를 구했고, 마지막까지 버려질 뻔했지만, 뒤늦게 프림 빌리지에 들어온 '외부인 아영'에 의해 그들이 베푼 사랑은 보답 받았다. 세계 각지에 프림 빌리지를 만들기 위해 떠났던 그들은 자신들이 실패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들이 있는 곳은 결국 프림 빌리지가 되었다. 그들은 앞으로도 더 큰 프림 빌리지 안에서, 거창하게 시작함에도 결국에는 언젠가 흩어질 수밖에 없는 세계라는 공동체 안에서 약속을 지키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프림 빌리지의 아이들은 자신의 공동체가 영원할 것이라 믿으며 살아가고, 무너지고, 또 약속을 지키며 공동체를 재건해나갈 것이다. 

 

사랑하기 어려운 세계를 사랑하는 일. 지금의 공동체를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 그를 위한 약속들을 하나씩 쌓아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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