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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런웨이

[도서] 도서관 런웨이

윤고은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어디에도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시국이라는 게 마음을 쪼그라들게 만든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자영업자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보고 있는 게 힘들다. 간신히 그 자리를 벗어나 살고 있다는 게 아프다.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니고, 그렇다고 울 수도 없으니 웃음을 지어야 하는 연습을 해야 할까. 그래서 더 감사한 일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기도 한다. 과거로 속해버린 열정, 언제 실행될지 모르는 계획들.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살게 하는 건 무엇일까.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건 사랑이라고 말해도 좋을까. 잡을 수 없는 존재, 사라져버린 사랑일지라도.

 

‘안나’에게는 그럴지도 모른다. 휴가차 떠난 여행지에서 우연히 맺어준 운명. 그와 결혼을 하고 새로운 삶을 계획한다. 결혼식은 미루었고 친구들의 축하만 받았다. 코로나 여파로 안나는 여행사에서 퇴직했다. 화자인 ‘나’는 보험사 직원으로 안나와 대학 동기로 어느 시절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냈다. 친했다면 친했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은 관계다. 오랜만에 연락을 해도 불편하거나 이상하지 않은 그런 사이. 종종 안나의 SNS에서 그녀의 일상을 확인하고 한 번씩 통화를 하고 안부를 나눈다. 안나는 도서관 통로를 걷는 장면을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안나는 도서관에서 AS안심결혼보험이란 책을 대출하는데 그건 책이 아니라 보험 약관집이었다. 약관집을 중고로 구하려는 이가 많다는 사실에 안나와 나는 놀란다.

 

안나와 자주 연락을 하지 않는 나에게 안나의 지인이 연락을 해온다. 그녀는 안나가 운영하는 독서모임의 회원으로 연락이 끊긴 안나를 걱정하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지인을 통해 안나의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안나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안나와 나눈 대화, AS안심결혼보험이 그녀를 찾는 단서라고 생각한다. 안나는 그 책을 고스란히 도서관에 반납했고 나는 그 책을 대출한다. 이제 소설은 안나를 찾아 나서는 과정이라기 보다 AS안심결혼보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20년간 납입을 하면 130%로 환급을 해주는 보험, 결혼에 있어 다양한 에피소드에 대해 보험료를 청구할 수 있지만 지급 가능성은 너무도 어렵다는 사실을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소설에서 들려주는 예단 예물에 대한 사례는 현재 결혼의 의미와 그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예단 예물로 지출된 비용을 청구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냉장고를 바꾸고 반상기를 싸지만 그건 해당이 안 된다는 너무도 정당한 보험사의 사유는 놀랍지만 타당해보인다. 반상기는 구시대적 발상이며 이전의 잘 사용하던 냉장고를 굳이 예물로 바꿀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다. AS안심결혼보험의 사례는 너무도 현실적이라 마치 이 소설이 이 보험에 대해 설명하며 결혼을 분석하는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다. 안나가 활동했던 독서모임에서 이 책(보험 약관집)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데 결혼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는 AS안심결혼보험를 중고로 내놓은 손해사정사 ‘조’를 만난다. 어쩌면 안나와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생각한 것이다. 상대가 들고 나온 건 안나가 대출한 책이 아닌 다른 버전이었다. 조를 통해 AS안심결혼보험이 가입자마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과거 AS안심결혼보험의 직원이었다. 가입자마다 특약이 다른 것처럼. 조를 통해 AS안심결혼보험에 대해 가입 절차나 약관과 특약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듣는다. 안나가 대출한 약관집에서 사라진 페이지에 대해서도. 둘은 자주 만나고 가까워진다.

 

그리고 안나가 연락을 해온다. 나는 안나에게서 사라진 약관집 내용이 어떤 것인지, 남편 정우가 AS안심결혼보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동안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남편과 안나, 둘 사이의 일상에 대해서도. 안나에게 정우가 어떤 존재인지. 안나가 얼마나 그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있는지도. 그가 떠난 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과거에 머무는 안나를 볼 수 있었다. 불쑥 모든 게 코로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소설 밖에 있는데, 그런 생각이 달려들었다.

 

“아무 신호가 없다는 게 위안이 될 때도 있다. 왜냐하면…… 불행의 신호를 미리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그리 많지도 않거든.” (246쪽)

 

안나와 정우와 보낸 반짝이는 시간들, 그것에 대해 들려주는 부분은 차오르는 슬픔을 감당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럼에도 안나가 지금 살아갈 수 있는 힘 역시 그 시간으로부터 나온다는 걸 알 것 같다. 안나가 살아갈 세계는 여전히 차갑고 어두울 것이다. 코로나 시국이 아니었다면 윤고은의 기발한 상상에 감탄했을 것이다. 작가가 시의성을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하여 현재의 삶에 대해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들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삶이 좋아하는 것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님을 알아. 먹구름에 가려 일몰을 볼 수 없는 날도 생기고, 애써 준비한 마음이 오해되고 버려지는 경우도 생기겠고, 삶의 타이밍이 늘 한발 늦을 수고, 내 경우엔 미련도 품을 수 없을 만큼 열 발쯤 늦을 때가 많고, 시간 낭비 같은 산책도 많지.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일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세계가 훼손되고 내 속도가 흔들릴 때도 울지 않을 거라고 말할 자신은 없는데. 그렇지만 무언가를 누군가를 아주 좋아한 힘이라는 건 당시에도 강렬하지만 모든 게 끝난 후에도 만만치 않다. 잔열이, 그 온기가 힘들 때도 분명히 지지대가 될 거야. (258~259쪽)

 

누군가는 안나에게 사랑이 끝났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슬픔에서 일어나 다른 것들을 보라고. 사랑의 끝은 누가 정하는가. 그 사랑 안에 있는 당사자만이 결정할 수 있다. 어떤 이도 그 사랑의 내부로 침범할 수 없다. 안나와 나의 관계가 그러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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