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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

[도서]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

강혜빈,김승일,김현,백은선,성다영,안미옥,오은,주민현,황인찬 공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4점

한겨레출판사의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 은 기획이 참신하면서도 영리한 기획이다. 시집이라는 게 호불호가 있어서 누군가에게는 다가가기 어려운 문학의 분야이기 때문이다. 우선 제목이 참 좋다. 요즘 시류를 제대로 파악한 제목으로 시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지나칠 수 없는 끌림이고 시에 관심이 없던 이들에게도 궁금증을 유발한다. 특히나 제목 그대로 혼자 점심을 먹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 자연스레 이 시집에서 가장 먼저 읽게 되는 시는 점심을 이야기하는 시가 된다. 물론 참여한 9명의 시인을 보면 그 가운데 좋아하는 시인이 있다면 그의 시를 찾게 된다. 참여 시인이 각각 5편 이상의 시를 썼고 안미옥 시인의 시는 조금 더 많다.

 

여자는 오후 열두 시가 되면

언제나 혼자서 이곳에 온다

 

메밀국수 한 그릇 주문하고

대부분 벽을 응시한다

 

벽 속에서 아는 사람의 글씨체를 보았다고

 

어느 날에는 중얼거린다

 

미래의 언어를 쓴다는 그 사람은

자신의 시대가 아직 오지 않음을 슬퍼하며

먼 곳으로 떠났다는데 (강혜빈의 「다가오는 점심」, 일부)

 

강혜빈의 시는 마치 열두 시, 점심에만 만날 수 있는 세계를 상상하는 듯하다. 혼자 같은 장소에서 점심을 먹는 여자, 오롯이 그곳에서만 마주하는 어떤 이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점심을 먹는다는 행위처럼 같을지도 모르겠다. 매일 마주하면서도 한 번도 말을 건네지는 못하는 이들, 그들에게 점심시간은 너무 짧고 다가가기에는 너무 멀다.

 

그러나 여자에게

가벼운 친밀감을 느끼기 시작할 때

오늘분의 점심시간은 끝이 나고

 

사람들은 문득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서둘러 밖으로 나선다 (강혜빈의 「다가오는 점심」, 일부)

 


 

점심시간은 누구나 똑같이 가질 수 있는 시간처럼 보이지만 점심에 하루가 열리는 이들에게는 점심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구나 삶을 살아가는 건 같지만 그 삶의 시간은 다르니까. 백은선의 시에서 그런 다름을 느낀다. 결코 우리의 점심은 될 수 없는 삶의 시간들.

 

나의 점심은 네게 한밤이었다

전화를 걸어 잠이 오지 않는다고

자꾸만 무서운 생각이 난다고

 

어린 새처럼 너는

칭얼거리곤 했는데

그럼 나는 가끔 내가 봤던

좋은 시를

때로는 노래를

읽어주기도 불러주기도 했다 (백은선의 「향기」, 일부)

 

그런가 하면 잠시나마 모여 말을 나누는 순간이 점심시간이기도 하니 황인찬의 이런 시는 조금 더 일상으로 파고들어온 기분이다. 대화가 아닌 의미 없는 짧은 수다가 모이고 흩어진다. 그 안에는 농담 섞인 진심도 담겼다. 긴 하루 동안 조금은 여유롭고 자유스러운 모습이다.

 

사람들은 어디 먼 곳에 가고 싶다고 했다

모두가 정말 맞는 말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점심에는 모두가 묶여 있죠 잠시 어딘가로

떠났다가 또 금방 돌아오죠 식당과 공원은 너무 가깝고

공원은 회사와 너무 가까워서 다들 정신이 없었어요 (황인찬의 「만남의 광장」, 일부)

 

하나의 테마로 묶였지만 시인은 자신의 고유한 시를 쓴다. 어떤 시는 어렵고 도통 알 수 없고 어떤 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점심을 대해 오래 생각한다. 그러니까 혼자 점심을 먹는 이들의 사정이라든가, 혼자 점심을 먹으면서 마주했던 풍경, 혼자 점심으로 먹었던 음식 같은 것들을 말이다. 다가오는 점심에는 무얼 먹을까. 혼자 점심을 먹을 친구에게 맛있게 먹으라는 문자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점심에 나는 걷는다

어디에나 음악이 들리듯 쏟아지는

사람들의 활기· · · 희망· · ·

인간은 혼자서 혼자가 될 수 없고

음식에는 죽음과 고통이 있다

우연히 들어간 꽃집에서 남미 식물을 보며

사라지는 판타날을 떠올린다

세계를 메우고 있는 비참함· · · 비참함· · ·

나는 소음 속으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만을 하고

빛을 피하며 걸으려 한다

길가에 개여뀌 꽃마리 작은 풀들을 본다

꽃에는 꽃말이 있다

꽃말은 꽃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내 이름은 나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오늘 나는 단지 무언가를 하기 위하여 무언가를 하다

언어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사람들은 누가 자신인지 알고 있다 (성다영 「점심 산책」,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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