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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도서] 나나

이희영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설정은 익숙하다. 죽음과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여기니까. 혼수상태의 경우 영혼은 기적처럼 육체로 돌아가거나 죽음을 맞이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봐온 이야기다. 이희영의 장편소설 『나나』도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했다.

 

“우리 죽은 거냐?”

“그럴지도.”

“그런데 멀쩡히 숨 쉬고 말하고, 저렇게 주스도 마시잖아.”

“그럼 안 죽었네.”

“하지만 아무도 우리를 볼 수 없는데? 우리가 하는 말도 못 듣잖아.”

“그럼 죽었나 보지.” (프롤로그, 7쪽)

 

프롤로그는 분명 영혼이 나누는 대화처럼 보인다. 버스 사고가 난 것뿐인데 열여덟 수리와 열일곱 류는 죽은 게 아닌데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되었다. 수리와 류 앞에는 영혼 사냥꾼 선령(?靈)이라는 남자가 나타나 일주일 내로 육체를 되찾지 못하면 자신을 따라 저승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멀쩡하게 자고 일어나서 할 일을 다 하는 수리의 육체는 영혼이 사라진 줄도 모른다. 영혼이 육체에게 다가가면 벽 같은 게 생겨서 차단한다. 육체가 자신의 영혼을 거부하기 때문이란다.

 

로사여고 2학년 한수리는 모범생이며 친구와 관계도 좋고 누구에게나 인기 많은 완벽한 학생이다. 그런데 영혼을 거부한다. 영혼은 납득할 수 없다. 육체 가까이에서 어떻게든 돌아가려고 애쓴다. 류는 다르다. 고등학교 1학년인 은류는 육체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부탁을 거절하는 법이 없고 모두에게 착하고 친절한 류는 영혼이 없어도 괜찮은 걸까.

 

소설은 수리와 류를 이야기를 교차로 들려준다. 사고가 나기 전 어떻게 살았는지 수리와 류의 일상을 보여준다. 수리는 뭐든지 다 잘하고 싶은 아이다.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놀기도 잘 놀고 SNS 활동까지. 계획한 대로 힘들어도 힘든 티를 내지 않아야 했다. 명상을 하고 자전거를 타면서 영어 단어를 외우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영혼은 마음이 복잡하다.

 

삶의 의미는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믿었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쌓아 올리고, 손에 잡히는 성취를 얻어 내는 것. 그 밖의 것들은 나중에 고민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생각하니 우스웠다. 나중은 정확히 언제일까? 쌓아 올릴 수도, 붙잡아 둘 수도 없는 시간을 참 가볍게 여겼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텐데. (27쪽)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지금이 편하다는 류는 예스맨이었다. 두 살 아래의 동생 완이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아픈 완이를 돌보느라 엄마와 아빠는 류를 챙길 수 없었다. 일찍 철이 든 류는 말 잘 듣는 아들, 착한 형이어야 했다. 완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생활에 적응하고 만족했다. 완이가 죽고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은 여전히 완이만 생각했고 류는 자신을 봐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수리의 영혼은 육체에 가까이 가지 못해 속상하고 류는 아예 육체에 관심도 없었다. 수리와 류에게는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는 게 필요했다. 또래였기에 그랬을까. 수리와 류의 영혼은 서로의 마음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칭찬을 받을 때마다 불안하고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힘들었던 수리, 엄마가 혹시 자신을 버린 게 아닐까 두려웠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사는 류.

 

혹여 완이는 알고 있었을까. 허물어진 것들은 다시 쌓으면 된다는 사실을. 삶은 콘크리트 건물처럼 견고하지 못하다. 쉽게 흔들리고 작은 충격에도 휘청거리는 상자 탑과 같다. 그렇기에 또다시 쌓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오래전 완이가 그랬듯이 말이다. ‘형아, 상자. 상자 줘’. 쌓아 올린 것이 무너질 때 오히려 박수를 치던 녀석이었다. 완이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한 번쯤은 힘없이 무너져 내리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고, 다시 쌓으면 된다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귓가에 머물렀다. (202쪽)

 

기발하고 신선한 설정에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는 소설이다. 십 대와 선령이 나누는 재치 넘치는 대화에 함께 웃다가도 영혼 없는 삶을 사는 게 어디 수리와 류뿐일까 싶은 생각에 마음에 무언가 쿵 하고 내려앉는 걸 느낀다. 어디선가 나의 영혼이 나를 따라다니는 건 아닐까 두리번거린다. 초조하고 불안해서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수리처럼, 이미 체념하고 마음의 문을 닫은 류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나의 영혼과 마주하는 순간이 필요하다고 여긴다면 이 소설을 만나보면 좋겠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내가 나를 안아주고 보듬어 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영혼이 바라는 일일 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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