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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도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모리미 도미히코 저/서혜영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4점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는 말이 있다. 우연의 필연성이 아니라 그 두에는 어떤 간절함이 숨어 있을 때가 많다. 만나야 할 사람이 사랑의 대상이라면 간절함은 더욱 커진다. 상대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고 우연한 만남의 반복으로 기대하는 자연스러움이라고 할까. 우연이 겹치면 운명이라고 믿을 정도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그런 치밀한 간절함이 숨어 있다.

 

2017년 영화로 개봉된 이 소설을 만난 이도 많을 것이다. 학교 후배인 그녀를 향한 짝사랑을 만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로맨스이다. 그런가 하면 소설 속 기묘하고 기이한 상황들은 그 자체가 판타지다. 그(선배)와 그녀(후배)가 각자의 시선으로 들려주는 하나의 연애소설이자 연작소설로 네 개의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배경으로 그녀가 있는 곳이라면 그가 따라나서는 형식이다.

 

첫 번째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클럽의 선배 결혼을 축하하는 술자리다. 모두가 2차로 향하는 순간 그녀는 혼자 밤거리를 거닌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술에 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낯선 밤거리, 술집에서 그녀가 만나는 이들은 한편으로는 술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녔기에 처음 만나는 사이임에도 친근하고 한편으로 그런 이유로 조심스럽다. 사업을 망하고 빚만 남고 이혼 후 딸과도 연락이 뜸한 쓸쓸하고 외로운 남자, 술 고래 같은 여자와 잘난 척하는 남자를 만나 술을 마시는 밤은 깊어간다. 그러다 유명한 이 백 씨의 술 마시기 시합까지 이어진다. 저마다 외롭고 쓸쓸한 인생을 살아온 이들이 모두 모인 집합체라고 할까. 다양한 인간 군상은 현실 속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건 그렇고 그녀를 따라나선 그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눌 기회를 찾지 못하고 취한 모습만 보여주고 만다. 아, 이래서야 고백은커녕 아는 척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안면을 텄으니 여름에 그녀가 간다는 헌책시장에 가야만 한다. 「심해어들」은 여름의 헌책시장에서 그와 그녀의 이야기다. 헌책들이 가득한 곳에서 동시에 같은 책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양보한다는 멋진 계획. 완벽 그 자체다. 하지만 계획대로 흘러갔다면 이미 그녀와 좋은 사이가 되었을 터.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달리는 순간 아이스크림을 든 아이와 충돌한다. 사과후 얼른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지만 아이는 자꾸만 그에게 달라붙는다. 그녀는 헌책시장에서 어린 시절 추억의 그림책을 찾지만 쉽지 않다. 그와 충돌한 아이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소년은 자신을 데리고 온 아버지에 대해 추억하며 자신이 헌책시장의 신이라는 이상한 말을 전한다.

 

나는 여기 있으면 책들이 모두 평등하고 서로 자유자재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껴. 그 책들이 서로 연결되어서 만들어내는 책의 바다는 사실 그 자체로 한 권의 커다란 책이야. (「심해어들」, 135쪽)

 

그림책을 찾던 그녀는 지난 봄밤에 만난 이들을 차례로 만난다. 아니 다다를까 이번에는 이백 씨의 매운맛 먹기 대회가 열리고 그가 참여한다. 대회에 참여한 이들은 원하는 건 옛날 유명 작가의 일기장, 메이지 시대의 열차 시간표, 고서와 음서, 그리고 그가 원하는 그림책. 봄밤이 술이라면 여름은 책이라니, 로맨틱한 조합이다. 매운맛에 정신을 차릴 수 없지만 말이다. 보통의 로맨스는 주인공의 멋진 모습으로 넘쳐나는데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속 그는 엉망진창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와 만났다는 것과 헌책을 살 돈을 그녀가 빌려주었다는 점이다.

 

사실 이 책은 판타지로 가득하다. 그와 그녀를 둘러싼 개성이 뚜렷한 주변 인물과 그들이 등장하는 배경이라고 할까. 이백 씨의 3층 전차나 헌책시장에서 홀연히 나타난 어린 소년과 같은 설정은 가을의 끝자락 대학축제에서 펼쳐지는 세 번째 「편리주의자 가라사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온다는 소식에 축제의 마지막 날 그는 거리를 다닌다. 그녀는 찾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의외로 그녀를 자는 일은 쉬웠다. 등에 커다란 잉어 인형을 업고 다니는 그녀를 발견했으니까. 「편리주의자 가라사대」는 대학시절의 추억을 불러온다. 색다른 먹거리,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 게릴라로 열리는 연극 <괴팍왕>까지 활기와 자유가 넘쳐난다.

 

등장인물 가운데 그녀만 제외하고 모두 감기에 걸린 마지막 이야기 「나쁜 감기 사랑 감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와 조각조각 이어지는 그와 그녀의 좌충우돌 만남기는 모두에게 해피엔딩을 꿈꾸게 만든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란 제목은 마치 짧은 청춘을 만끽하고 맘껏 사랑하라는 인생 선배의 조언처럼 느껴진다. 지나고 보며 가장 아쉬운 게 바로 청춘과 사랑이 아니던가.

 

창으로 들어오는 겨울 햇살이 마치 봄날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선배는 그 햇살 속에서 턱을 괴고 앉아 어쩐지 낮잠 자는 고양이처럼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배 밑바닥에서부터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공기처럼 가볍고 작은 고양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초원에 누운 기분이랄까요. (「나쁜 감기 사랑 감기」, 391쪽)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영화 속 익살스러운 표정의 인물들을 상상한다.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밤, 그 밤거리를 휘젓고 다니는 청춘들과 지친 어른들, 그리고 사랑을 찾아 헤매는 그와 어느새 그가 궁금해지는 그녀. 그들이 만들어낸 밝고 유쾌한 이야기. 로맨틱 코미디와 판타지를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그들의 밤에 취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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