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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의 말

[도서] 콜센터의 말

이예은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4점

지난 6월 사용하는 인터넷 요금에 대해 문의할 일이 있어 콜센터와 통화를 시도했다. 요즘은 직원이 아닌 AI가 먼저 안내를 시작한다. 차분히 하라는 대로 했지만 결국 통화를 하지 못했고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한 번에 연결되기란 어렵다는 걸 알기에 재차 고객센터 전화번호를 눌렀다. 기억의 오류가 있을지 모르지만 상담원과 통화를 하기까지 10여 분의 대기 시간이 걸렸다. 홈페이지, 메일, ARS, 일대일 채팅까지 다양한 경로로 소비자 불만사항을 접수하고 해결하지만 직원과 직접 통화를 해야만 마침표를 찍는 기분이다. MZ 세대가 아니라서 그럴까. 여전히 나는 사람과 통화하는 게 제일 편한다.

 

‘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인 이예은의 에세이 『콜센터의 말』을 읽기도 전에 이런 기억이 떠오르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콜센터에서 일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저자가 경험한 일들이 궁금하면서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걱정하게 되는 건 콜센터의 업무의 특수성을 알아서다. 불특정 다수와 통화를 하면서 그들의 불만사항을 접수하면서도 고객의 입장이 아닌 사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 무자비한 언어폭력은 물론이며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인간과 마주하는 일 말이다.

 

그렇기에 보통의 콜센터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만날 수 있다. 더불어 저자가 일본 여행사의 콜센터에서 2020년 1월부터 1년 반 동안 근무하면서 겪었던 이야기와 그 안에서 건져올린 말에 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시대로 접어든 시기, 여행사라는 특수성을 생각하면 콜센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짐작하지 못했던 터라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말과 다르게 일본 말의 고유한 뜻과 사용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는 일본에 대한 이해와 기본적인 일본어를 배우는 이라면 작은 도움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통해 콜센터 상담원이 어떤 말을 주로 사용하는지 알게 되었다. 기분과 감정은 배제된 업무만을 위한 말이었다. 일본이라는 걸 떠올려도 한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대단히 유감이지만’,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는 콜센터가 아닌 일상에서도 습관처럼 튀어나올 것 같다. 일본에서는 고객과 상담을 시작할 때 이름이 아닌 성을 말하는 점은 이름 전체를 말하는 한국의 콜센터와 달라 인상적이었다.

 

비대면의 시대를 연 코로나 시대의 말로 콜센터의 많은 직원이 정리해고를 당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된 ‘부득이하게’가 무척 아프게 다가왔다. 여행업이라는 특수상황 때문에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일을 그만두는 이들과 남게 된 이들 사이에 오가는 말들은 얼마나 불편했을까. 저자가 외국인이라는 걸 알고 ‘일본인 바꿔 주세요’ 란 말이나 직원을 하대하는 ‘야, 너’라는 말은 아무리 고객이라고 해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고객이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가장 첫 번째가 콜센터기에 직원이 감당해야 할 말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 고객의 입장에서 그걸 알면서도 불편사항을 말해야 하는 창구라서 감정 조절이 어려웠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최대한 차분하게 나의 상황을 말하고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불만이 터져 나왔을 테니까.

 

콜센터에서 일하는 내내 사무친 단 하나의 진리가 있다면, 지구라는 행성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고, ‘보통’의 정의 또한 제각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들을 전부 이해하려 들어선 안 된다. 어차피 그들도 나를 다 이해하지 못할 테니. 내 기준에서 누군가가 비상식적이라면 그 사람의 눈에는 내가 비상식적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조금씩 이상하고 어긋나 있지만, 어떻게든 부대끼며 살아간다. (140쪽)

 

저자는 에세이를 통해 콜센터의 일상을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지만 고객을 응대하면서 느꼈을 복잡한 감정과 스트레스가 전해졌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생각한다. 그 말들이 불만이 담긴 항의와 요구사항이라면 더욱 힘들 것이다. 아무리 직업이라 해도 한 번쯤 그들의 고충을 생각하다면 조금 늦은 답변에도 편하게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는 점만 기억해도 훨씬 나을 테니까.

 

말이 주는 힘을 생각한다. 업무적인 말이든 사적인 말이든, 감정이 담겼던 그렇지 않든 혼잣말이 아닌 이상 말은 누군가에게 닿는다. 저자의 바람처럼 그 말이 상처와 아픔이 아니라 위로와 공감을 주는 말이라면 좋을 것이다. 나의 말이 그렇기를 바란다. 부드러운 온기로 채워진 말이 당신에게 안착하기를.

 

이 세상에서 누군가를 상처 주려는 말보다 보듬고 북돋아주려는 말이 더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 때로는 회상하는 일조차 버거웠던 기억을 모아 기어코 한 권의 책을 완성한 것은, 단지 이 말이 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196쪽)

 

덧붙이자면 주인공이 카드사 상담원이었던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이나 김의경의 소설 『콜센터』를 함께 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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