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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1

[도서] 소설 보다 : 가을 2021

구소현,권혜영,이주란 공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소설에서 불행과 불운으로 둘러싸인 삶을 살아가는 인물을 접할 때 반사적으로 내 삶을 둘러보게 된다. 소설 속 인물보다 괜찮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안도한다고 할까. 생각해 보면 그건 소설이고 현실의 불행과 불운은 얼마나 강하게 우리는 몰아치고 있는지 확인한다. 『소설 보다 : 가을 2021』에서 만난 인물들이 하나같이 행복과는 먼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유인지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왠지 다 알 것 같다. 삶이란 참 팍팍하고 고달프니까.

 

구소현의 「시트론 호러」는 유령 ‘공선’이 주인공이다. 굶어 죽은 10년 차 공선은 사람이나 사물을 만지지 못한다. 우리가 예의 생각하는 유령의 능력 같은 건 없다. 그녀는 특이하게도 자신 대신 책을 읽어주는 사람을 찾는다. 이른바 독서 메이트. 소설 창작 모임에 나가는 효주가 공선에게는 딱이었다. 함께 모임을 하는 태오는 형식적인 읽기에 그쳤고 지민은 블로그 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효주는 한 번 잡은 책은 끝까지 읽었다. 그런 효주에게 경제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생겨 학교에 나오지 않고 대신 태오와 지민을 통해 그의 소설을 읽게 된다. 태오와 지민은 효주의 소설 속 아쉬운 부분과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공선은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고 싶었다. 태오와 지민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공선은 온전히 알 것만 같았다. 어쩌면 공선은 효주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선은 소설을 친구로 여기는 유령이었기 때문에 소설의 하자는 사실상 공선이 소설을 더욱 자세히 읽게 되는 관계의 진입로이기도 했다. 상대방의 하자에서 고유한 사랑을 발견하고 고유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건 사람과 유령이 똑같았다. (「시트론 호러」, 25쪽)

 

구소현과 마찬가지로 처음 접하는 권혜영의 단편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도 역시나 우울하다. 교대 근무를 하고 돌아온 ‘나’는 화재 경보 소리에 집을 나선다. 진짜 불이 난 건지 경보기가 고장 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파트 비상계단을 내려간다. 자신과 같이 밖으로 나온 이들의 소리는 들리지만 기이하게도 그들을 확인할 수는 없다.

 

계단 아래 계단, 그 아래도 다시 또 계단.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의 구렁텅이였다. 발밑으로 펼쳐진 공간의 밑바닥이 가늠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나보다 아래에 위치한 사람의 검은 머리통. 그리고 가운데로 수렴하는 계단뿐이었다.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 54쪽)

 

 

어디가 끝인지 모르고 막연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일은 쉬지도 못하고 열심히 일했지만 남은 건 몇 개의 카드와 빚뿐인 자신의 모습과 닮은 듯하다. 암울한 상황은 화재경보기 오작동이라는 안내를 받았지만 ‘나’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 그 어디에도 ‘나’가 기대하는 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제목만큼 울적하고 무거운 소설이다.

 

이주란의 「위해」 도 다르지 않다. 다만 이주란의 소설은 언제부턴가 소설보다는 자세한 일기처럼 여겨진다. 이주란이 인물은 대체적으로 가난하고 소극적이고 자신의 아픔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주란은 그 마음을 섬세하게 포착하여 들려준다. 주저하고 서성이며 내뱉지 못하는 어떤 마음들에 대해.

 

사람들은 뭘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수현이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할머니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수현의 생각은 달랐다. 난 어느 정도 행복하고 나야말로 긍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중요한 건 역시 몰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해」, 99쪽)

 

무언가가 좋다. 싫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 그걸 하고 싶었다. 해본 적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말들. 그걸 하고 싶었다. (「위해」, 103쪽)

 

그리하여 수현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옆집 소녀 유리를 존중한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뭔가 강요하지 않는다. 지난 시간에 대해 묻지 않고 필요한 대화를 나누고 유리가 원하는 대로 함께 한다. 얼마나 힘드니?라는 섣부른 위로가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대로 따라주는 게 진정한 위함이라는 걸 알려준다고 할까. 그러니 위로하여 마음을 풀어주는 위해(慰解)는 우리가 쉽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닌 것이다.

 

『소설 보다 : 가을 2021』의 세 단편은 표면적으로 우울하고 애처롭다. 그럼에도 왠지 위로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나도 소설 속 그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명확한 말은 떠오르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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