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

[도서] 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

정명섭 등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1호선이 인과 예가 사라진 아사리 판이라면, 2호선은 정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뢰한들의 세상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공항철도와 연결되는 9호선은 출근 시간에 지옥도가 열립니다. 인간이 어디까지 쪼그라들 수 있는지, 어디까지 치사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막돼먹을 수 있는지를 보려면 고시원에 살면서 9호선 오전 급행을 타보면 됩니다.(…)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보지 못한 제가 공항철도를 이용해 출퇴근을 합니다. (「공항철도: 호소풍생」, 전건우)

 

같은 시각 같은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리는 이들은 서로를 기억한다. 어쩌면 눈 인사를 하는 정도가 되어 하루라도 안 보이면 궁금할지도 모른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마주하는 이들이지만 저마다의 사정은 다 다르다. 누군가는 직장으로 향하고 누군가는 간병을 위해 병원으로 향하고, 누군가는 아무런 목적지 없이 그냥 집을 나왔을 수도 있다. 지하철 노선을 다 돌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에게는 어떤 말 못 할 사정이 있을까. 청량리에서 시작한 경춘선의 승객들이 모두 춘천으로 향하지 않듯 공항철도의 승객들은 모두 여행객이 아니다. 단순히 이동 수단이라 칭할 수 없는 지하철은 어느새 이용객 모두에게 일상이자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6명의 작가가 지하철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낸 소설집 『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에서 다채로운 지하철 풍경을 만난다. 지극히 현실적인 지옥철의 모습에서 어디론가 다른 세상으로 이끌어 줄 것 같은 마법의 공간으로 때로는 설레는 로맨스가 피어나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어느 시절 아주 잠깐 지하철을 이용했던 내가 기억하는 지하철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에 놀라면서도 그 안에서 펼쳐지는 삶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취객이나 잡상인과의 다툼 정도로만 예상했던 전건우의 (「공항철도: 호소풍생」은 이제는 한물간 협객 ‘편 관장’은 아들과 살기 위해 상경한다. 공항철도에서 그는 국정원 직원이라는 사람의 요청으로 승객 중 산업 스파이를 찾아 나선다. 아니 어느 시절이라고 국정원 직원이라는 말을 믿는단 말인가. 그러나 ‘편 관장’은 꿋꿋하게 그들과 맞선다. 하나의 엉뚱한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었지만 소설에서 ‘편 관장’에 의해 산업 스파이는 검거된다. 소설처럼 지하철 안에서 할아버지가 난리는 피운다면 과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가 있을까. 저마다 도착할 곳만 생각하며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하며 타인의 일이라 여기는 현대인에게 일침을 가하는 듯하다.

 


 

나와는 별개라는 생각들, 그리하여 사고가 발생했을 때 나만 살겠다고 출입구를 향해 달려드는 이기적인 모습은 정명섭의 「2호선: 지옥철」에서 생생하게 그려진다. 좀비라는 실체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공포에 휩싸여 매뉴얼 따위는 잊은 결과는 대참사로 이어졌다. 과거의 그날을 회상하는 형식의 이 소설은 코로나 바이러스뿐 아니라 다가올 미래에 마주한 재난과 공포에 대응하는 인간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더불어 지하철에서 발생한 사고로 희생한 노동자를 추모하게 만든다.

 

단순한 죽음뿐만이 아니다. 가족들의 소멸은 그들이 공유했던 기억들이 모두 증발되어버린 것을 의미한다. 가족이 죽었다는 것은 자신이 기억될 공간이 소멸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의 서글픔이라고나 할까. ( 「2호선: 지옥철」, 정명섭)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다종다양한 인간들이 모인 곳이 바로 지하철이다. 그곳에서 매일 누군가를 관찰하는 이가 있다면 조영주의 「6호선: 버뮤다 응암지대의 사랑」 속 ‘해환’처럼 작가일지도 모른다. 서울 시내 유일한 단선 운행을 하는 6호선에서 해환은 고시생 남자를 만난다. 지하철에서 고시 공부를 하는 남자와 소설을 구성하는 여자. 가난한 연인은 조금씩 사랑에 빠진다. 새로 개통된 역의 대기실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주변 사람들의 응원을 받는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지하철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결말이 보여주는 건 지독한 현실 직시하라는 메시지처럼 들려 안타깝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어디서든 사건은 발생한다. 그런 의미로 보면 지하철이라고 특별할까 싶지만 밀폐된 공간으로 여기면 김선민의 「5호선: 농담의 세계」처럼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이나 정해연의 「1호선: 인생, 리셋」처럼 특정 시간 특정 역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상상이 충분히 가능하다. 「5호선: 농담의 세계」에서는 이곳이 아닌 그곳에 도달해서야 이곳이 주는 안전함에 감사할 수 있고 「1호선: 인생, 리셋」속 인물처럼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자 타임리프를 시도하지만 인생이란 언제나 후회를 안겨준다는 교훈을 안겨준다.

 

누군가 지금도 지하철을 기다리고 누군가 지하철 안에 있을 것이다. 옆에 있는 사람을 관찰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이용할 일이 없는 지하철 노선도를 바라본다. 복잡한 노선들이 우리네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속에서 만난 이야기는 판타지나 SF든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더 이상은 모두의 지하철이 지옥철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쉬운 점은 부산, 대구, 광주, 대전의 지하철을 배경으로 한 단편이 없다는 점이다.

 


출처 - 네이버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