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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도서]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저/김연수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인생이 공평하지 않고 노력과는 상관없이 흘러간다는 걸 알면서도 뭔가를 기대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그 기대마저 없다면 삶이 너무 서글프기만 하다는 걸 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불운과 불행을 지나쳐오면서 이제는 어떤 일들도 받아들이고 감당할 수 있을 거라 다짐하지만 매번 무너지고 만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자조하며 쓸쓸함을 견디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현실이든 소설이든 인생은 뭘까 묻다가 결국 동지애를 불러온다고 할까.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을 읽으면서 모든 건 지나가고 그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40여 년 전에 발표된 소설집의 열두 편 단편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다 소설 속 젊은 인물들이 이제는 노년의 시기를 지나고 있을 텐데, 그렇다면 지금은 인생이 뭐라는 걸 조금을 알게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하지만 살면 살수록 모르는 것들이 쌓여가니 그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열두 편의 이야기는 저마다 어려움을 안고 있다. 때로는 그 어려움을 인정하지 못해서 깊은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도 있는데 몇 편의 단편에서 그런 게 보였다. 그건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고 미련 때문이기도 하다. 카버가 보여주는 단편 속 인물이나 일상은 특별할 게 없다. 그래서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고 우리의 현실과 고민을 대입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40여 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직장 동료 버드의 집에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아 가는 ‘나’와 아내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깃털들」은 그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무관심하고 단절된 채로 살아가는지 느낄 수 있다. 직장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했지만 정작 버드의 아들 이름이나 집 안에서 공작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건 다른 단편에서도 이어진다. 직장에서 실직한 남편의 무기력한 모습을 그린 「보존」에서 그는 냉장고가 고장 난지도 모른다. 퇴근한 아내가 재료가 상하기 전에 요리를 하고 냉장고에 대해 상의를 해도 냉장고를 구하긴 구할 거라고 할 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경매에 가보자는 아내의 말에도 시큰둥하게 대한다.

 

마찬가지로 병원에서 일하는 ‘나’와 방문판매로 비타민을 파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비타민」의 부부도 전혀 소통하지 못한다. 아내가 무슨 고민을 하며 어떻게 사업을 이어나가는지 ‘나’는 전혀 관심이 없다. “당신이야 내가 비타민을 복용하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쓰겠지. 중요한 건 그거야. 당신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비타민」, 141쪽) 아내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가 내게도 들리는 것만 같다.

 

어쩌면 무심하다 못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이들은 마침내 맞이하게 될 결과가 두려운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꾸 회피하고 미룬다. 「신경써서」 속 로이드와 이네즈가 그렇다. 상의할 게 있다고 말하는 이네즈를 로이드는 회피한다. 무슨 이유로 따로 살고 있는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로이드가 이네즈의 방문에 샴페인을 화장실에 감추는 장면으로 대충 알 것 같다. 그러니까 이네즈가 상의할 일은 이혼이다. 이네즈가 찾아왔을 때 로이드는 한 쪽 귀가 귀지로 꽉 막혀 잘 듣지 못하는 상태다. 이네즈가 로이드의 귀지를 빼주려고 방법을 시도하는 게 이 단편의 전부이지만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네즈는 뭔가 해결하려 애쓰고 로이드는 두려워하고 방관하는 것.

 

“어쨌거나 뭔가 하긴 해야지. 일단 이것부터 해보는 거야. 만약 그래도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그게 인생이야. 그렇지 않아?” (「신경써서」, 163쪽)

 

 

뭔가 하긴 해야 하고 잘 안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 나가는 일이 인생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명백한 이야기. 그럼에도 우리는 매번 실패하고 좌절한다. 왜냐하면 누군가 꿈꾸고 계획하는 인생에는 실패와 좌절이 없기 때문이다. 별거했던 부부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순간 집을 비워줘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생기는 「셰프의 집」, 사랑했던 시간, 좋았던 시간을 뒤로하고 직장 동료와 바람이 나 떠나버린 아내의 빈자리에 육아와 일로 힘들어하는 「열」은 안타깝다. 「열」의 주인공은 아내의 배신에 분노하면서도 하루하루 일상을 이어가야 한다. 그를 도와주는 주변인의 등장으로 안정을 찾지만 곧 또 다른 어려움에 빠진다. 그 과정에서 그가 깨달은 것은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그것과 다르지 않아 울컥한다.

 

그는 자신들이 함께한 인생이 자신이 말한 그대로 이뤄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 인생은 이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나침은 ㅡ 비록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는 맞서 싸우기까지 했지만 ㅡ 이제 그의 일부가 됐다. 그가 거쳐온 지난 인생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열」, 254쪽)

 

모든 게 계획한 대로 이뤄진다면 삶의 비밀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우리는 데려다 놓는다. 아이의 여덟 살 생일 케이크를 주문하고 행복한 시간을 기대하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속 부모에게 닥친 일은 아이의 교통사고였다.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아이는 수술을 했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 의사는 괜찮은 상태라고 말하지만 부모는 절망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런 와중에 집에 잠깐 다니러 간 사이 이상한 전화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아이는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나중에야 그 전화를 기억한다.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주문했던 빵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빵집 토해낸다. 사장은 그들에게 자신이 만든 빵을 내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여기에 있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127쪽)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었다.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 있는데, 그 빛이 마치 햇빛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128쪽)

 

실은 단편의 제목처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것들이 우리 인생을 지켜주고 지탱해 주는지도 모른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실과 슬픔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처럼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다. 그저 지나온 삶의 고단함과 쓸쓸함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고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힘을 얻는 것, 그런 경험들을 통해 그것이 인생이라는 걸 우리는 배우고 알게 된다. 불운과 불행의 시간 속에서도 삶은 이어지고 다시 희망을 생각하는 일, 산다는 건 그런 거라고.

 

표제작 「대성당」에 느끼는 것도 그런 것이다. 화자인 ‘나’는 아내의 친구인 맹인이 자신의 집에 방문한다는 게 영 내키지 않는다. 맹인을 위해 책을 읽어주던 아내가 그와 오랜 시간 관계를 이어온다는 사실도 못마땅하다. 그러니 그런 맹인을 만난다는 게 반가울 리 없다. 그리고 그와 무슨 대화를 나눠야 할지도 모른다.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모든 걸 다 끝낸 후 맹인은 볼 수 없는 TV 속 대성당에 대해 설명하는 일이 유쾌할리 없다. 그러다 맹인이 대성당을 그려보자고 제안한다. ‘나’의 손에 맹인이 손을 올리고 함께 대성당을 그리기 시작한다.

 

“자네 인생에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겠지. 그렇지 않나, 이 사람아? 그러기에 삶이란 희한한 걸세, 잘 알다시피. 계속해 멈추지 말고.” (「대성당」, 309쪽)

 

그리고 맹인은 화자에게 눈을 감아보라고 말한다. 대성당을 그리는 일이 다 끝나고 맹인이 어떠냐고, 그들이 그린 대성당을 보고 있냐고 물어도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눈을 감은 그 시간은 이제껏 자신이 살아온 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나’가 느끼고 경험했을 그 모든 것들을 우리는 알 수 없다. ‘나’가 눈을 감고 그림을 그리기 전 맹인을 이해하려 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라고 말하는 그 놀라운 신비로움을 알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표제작 「대성당」은 아름답고 훌륭하다. 인생에서 우리가 쉽게 말하는 것들, 함부로 단정했던 모든 것들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준다고 할까. 맹인의 말처럼 삶이란 희한하고 멈출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산다는 건 어렵고 알 수 없어 두렵지만 그것 때문에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게 인생이다. 어떤 기대도 어떤 절망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절망하더라도 삶의 희망과 기대를 놓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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