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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밥일지

[도서] 쇳밥일지

천현우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기술 하나면 있으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기술이 제일이라고 했던 시대는 사라진 것일까. 한때 공고, 기술고라 불리던 학교는 이제 무슨 과학고나 산업고로 바뀌었다. 학업과 일을 함께 배울 수 있다고 홍보를 하지만 정작 실습에서 차근차근 배우는 대신 현장에 투입되어 무보수로 일하는 경우가 허다한 게 현실이다. 그러게 공부를 잘해서 인문고에 들어가 대학에 가야지 하는 아무 말이나 하는 어른들도 있을 것이다. 천현우의 에세이 『쇳밥일지』를 읽게 된다면 함부로 그런 말을 하지는 못한다. 누구에게나 능력 있는 부모와 환경이 주어지는 건 아니니까.

 

저자의 환경도 그러했다. 부모의 이혼과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가난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온전하게 자신의 능력으로 살기를 바랐기에 실업계 고등학교를 택했다. 고졸보다는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에 기능대에 들어갔다. 직장인과 같이 하루 종일 받는 수업에서 재미를 찾기는 어려워다. 현실적으로 빚으로 낸 등록금도 문제였다. 휴학을 하고 공장 아르바이트를 하다 학교로 돌아왔다. 실업고, 기능대를 나와도 마주한 현실은 잔혹했다. 힘든 주야 교대 근무를 해도 야간 수당 시간 책정이 적어 월급은 너무 적었고 법으로 보호받는 제도는 어디에도 없었다. 언제든 대신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그마저도 불안했다. 거기다 또래와 비교되는 시선들이 저자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우정을 쌓아온 이들에게조차 전문대 나와서 대기업 가기는 어렵지 않냐는 말을 들었다.

 

한국에서 명문대란 만병통치약 같아서 어딜 가나 약발이 들었다. 당장 효성만 해도 현장 쇳밥 수십 년 먹어온 기술자가 명문대 학식 몇 년 먹은 관리자 눈치를 살폈다. 게임 속 세상도 예외가 아니었다. 은근슬쩍 대학을 드러내는 이부터, 명문대생을 사칭하는 유저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이제껏 봐온 세상이 그 꼴이었지만, 학벌의 그림자가 우리 사이에까지 드리우지 않길 바랐다. (92쪽)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받은 월급은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라 편입을 결심했는데 어머니가 사기를 당해 빚까지 고스란히 떠안는다. 월급으로는 턱도 없었다. 주말 막노동을 하면서 용접에 대해 알게 되었다. 용접이 얼마나 멋진 일이며 대우도 나쁘지 않고 국가에서 교육비도 대준다는 사실도. 용접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들어와 다시 시작해야 했다. 자격증을 따고 취직한 공장은 하청의 현실과 정직원과 비정규직의 차별, 무방비로 노출된 위험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그곳에서 경리 직원 ‘초원 씨’를 만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초원이 서울로 가면서 헤어졌지만 팟캐스트를 듣고 경제와 정치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직 후 조금 안정되었나 싶을 때 어머니의 암 진단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취업의 시간이 이어졌다.

 

내가 무슨 대기업만 노리는 것도 아닌데, 알짜배기 중견 기업 찾느라 눈알 굴리는 것도 아닌데, 그저 다달이 200만 원 월급에 여덟 시간 일하면 충분한데, 그조차 이리 힘겨울까. (203쪽)

 

 

 

그럼에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용접공으로 살아가는 청년의 현실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제안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 점차 그의 글은 방송, 언론에 노출되고 칼럼을 청탁 받았다. 현장 노동자 지인들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저자가 만난 이들은 그가 직접 일한 현장의 동료였다. 대학 1학년 ‘노키아’ 공장에서 알바를 하며 만난 여자 동창 은주를 시작으로 용접 학원에서 만난 동생, 용접이라는 걸 알려준 포터 아저씨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곧 비정규직, 노동자의 모습이었다.

 

『쇳밥일지』는 용접을 하는 청년공의 기록이자 노동 일선의 체험이며 노동 현장에 대한 고발이라 할 수 있다. 낮은 임금, 열악한 근로 환경, 산재에 대한 회사의 생각, 외국인 노동자의 처우까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지방 중소 기입의 현실을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기록할 수는 없다. 현장을 경험한 이만이 들려줄 수 있는 생생한 기록이다. 청강대의 졸업 축사 요청을 수락한 그가 말하는 용접이 그를 세상과 연결시켰고 이제는 글로 세상을 아름답게 용접하는 이로 만들었다.

 

‘용접’. 녹여서 붙인다는 뜻처럼 용접봉이 지난 곳은 열이 식으면서 철과 철 사이가 메꾸어집니다. 쇠에다 대고 하는 바느질이라고 생각하심 편할 거예요. 이렇게 메꿔진 흔적을 비드라고 하는데요. 이 비드의 모양으로 용접 실력을 가늠합니다. 좌우 간격이 똑바를수록, 푹 꺼졌다가 볼록하지 않을수록, 눈으로 봤을 때 예쁠수록 ‘좋은 용접’인 셈이죠. 잘 된 용접은 금속판 위에 그린 그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64~265쪽)

 

『쇳밥일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방 중소기업의 현실이나 용접공을 비롯한 기능공의 삶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이다. 주변에 이런 일을 하는 이가 없다는 이유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그렇다. 그러니 이런 책을 읽은 게 다행이지 않은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이들의 삶에 대해 요즘 MZ 세대의 사고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생각한다. 저자가 돌아와서 들려줄 이야기를 기대한다.

 

앞으로 내가 일해나갈 곳은 현장이 아닌 사무실. 파란 작업복이 하얀 와이셔츠로 바뀌고, 메꾸어나가야 할 공백은 철판과 철판 사이에서 지면과 지면 사이로 바뀐다. 하지만 돌아오리라. 내가 지나쳐왔던 세상, 담배 냄새와 절삭유 냄새로 찌든 곳. 비지땀 흘리며 뿌듯했던 하루도, 죽살이에 벅차 힘겨웠던 하루도, 이내 막걸리와 소주로 씻어내고선 내일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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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우아

    기름밥을 먹으면서 최선을 다하는 청년 용접공의 불꽃 튀는 용접을 보면서
    인생판 위에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을 다시 한 번 새겼습니다~~

    2022.11.11 17:3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자목련

      오우아 님의 말씀처럼 저다마의 인생 위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마음, 우리에게 필요하겠지 싶어요.

      2022.11.14 12:24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