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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도서]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중에서)

 

어쩌면 우리는 모두 연결된 존재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거나 먼 훗날 알게 되는 것이다. 김연수의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으면서 이상하게도 그런 확신이 들었다. 저마다 자신의 삶을 사느라 돌아보지 못한 어떤 기억들, 어떤 과거 속에 우리는 스치듯 지나쳐왔을지도 모르고 미래의 시간에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그렇게 따지면 모든 일에 다 이유가 있을 거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과 연결돼있다고 믿고 싶다.

 

김연수의 단편은 오랜만에 읽었다. 내가 좋아했던 그의 소설이 이런 것이었지 생각했다. 그러니까 존재에 대한 의미와 확신, 따로 또 같이 이어진 관계, 심연에 닿으려는 끊임없는 이해와 노력 같은 것들. ‘나’와 ‘지민’의 과거와 현재를 들려주는 표제작「이토록 평범한 미래」부터 그랬다. 1999년 여름 스물한 살의 ‘나’와 ‘지민’은 외삼촌이 일하는 출판사에 찾아간다. 지민이 엄마가 자살하기 전 쓴 소설 『재와 먼지』를 찾기 위해서다. 외삼촌에게 들은 소설의 내용은 동반자살을 선택한 연인이 과거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는 SF 적 내용이었다.

 

놀라운 건 나와 지민이 동반자살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와 먼지』 속 연인은 과거 처음 서로가 서로를 만났을 때부터 차근차근 살아간다. 미래로부터 과거의 삶을 사는 것이다. 외삼촌은 어린 연인에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 아닌 오히려 미래입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29쪽)라고 말한다. 시간이 흐른 뒤 소설가가 된 나는 지민과 결혼했고 『재와 먼지』를 읽게 된다. 그리고 지민과 서로가 기억하는 그 시절을 돌아본다. 간절하게 바랐던 미래를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는 외삼촌의 말처럼 미래를 기억한 건 아닐 것이다. 그러니 그 미래의 소중함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연수가 표현한 미래를 기억하는 일은 희망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울림을 전한다. 삶의 신비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제 안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이토록 평범한 미래」, 34~35쪽)

 

그러니까 불행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삶이라도 우리는 과거 아닌 미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난주의 바다 앞에서」,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로 이어진다. 남해의 한 섬의 강연을 온 ‘정현’이 대학 동창 ‘손유미’를 만나는 「난주의 바다 앞에서」에서 과거 손은정이었던 유미가 어떻게 섬에서 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들려준다. 평범한 삶을 살다가 아이를 잃는 고통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방황하다 과거 복싱을 했던 정현이 들려준 ‘두 번째 바람’이란 말에 일어나게 되었다고. 유미가 그 이야기와 함께 떠올린 ‘정난주’의 삶도 그랬다. 200년 전 가족을 잃고 아이와 유배를 가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끝내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고 전해지는 이야기.

 

버티고 버티다가 넘어지긴 다 마찬가지야. 근데 넘어진다고 끝이 아니야. 그다음이 있어. 너도 KO를 당해 링 바닥에 누워 있어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넘어져 있으면 조금 전이랑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져. 세상이 뒤로 쑥 물러나면서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 나한테로. (「난주의 바다 앞에서」, 60쪽)

 

 

누구나 인생에서 수없이 넘어지겠지만 그다음이 있다는 걸 생각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두 번째 바람’은 어쩌면 불행과 슬픔을 인정하는 일이며 삶이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아닌 미래로 향하고 있다는 걸 말하는지도 모른다. 그 바람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다면 그에게는 세 번째 바람을 만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차피 삶이란 고독하고 불행과 불운의 연속이라 해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미래를 기억하는 일이다.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속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가 누군가 대화를 나누는 일도 그러하다. 손자인 ‘나’는 할아버지의 대화에 등장하는 세례명 ‘바르바라’가 오래전 할아버지의 구술 녹음을 떠올리고 찾아보게 된다. 그리고 녹음을 통해 ‘바르바라’가 과거 1949년 할아버지가 북한의 수도원에 있을 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여동생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바르바라’에 대해서도 듣게 된다. 그것은 전설적 성녀인 동시에 할아버지를 지탱해 주는 존재였다. 이 단편을 읽는 동안 나는 엄마를 생각했는데 현재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싶은 것이었다. 내가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은 나와 함께 살아온 시간과 고모에 들은 내가 존재하기 이전의 모습이다. 내가 조카나 주변인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통해 엄마는 미래에도 기억될 것이니까.할아버지를 통해 ‘나’가 알게 된 바르바라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결국 이렇게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으로 미래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신이 되어 이 모든 세계를 인식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의 기억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며 자신의 존재를 확장해나갈 수는 있어. 우리의 기억은 시공간적으로 겹쳐져 있으니까.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235쪽)

 

한 사람의 존재로 인해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가 곁에 있지 않더라도 그를 생각하고 기억하는 힘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에서 확인한다. 단편 2014년 4월 ‘나’는 옛 연인 ‘희진’에게 메일을 받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희진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들려주는데 한국의 인디 대표로 초대받아 일본에서 공연하다 자작곡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를 부르다 울게 된 사연과 뒤풀이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자신이 어떻게 초대가 되었는지 듣게 된다. 나와 희진이 과거 연인 시절 일본 여행에서 한 카페에 갔던 시점에 희진을 초대한 이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 희진과 나가 신청한 음악이 당시 절망에 빠졌던 그를 일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희진이 남긴 사인을 통해 내내 찾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나를 기억하게 된 일에 대해서 생각했어. 나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동안에도 나를 기억한 사람에 대해서 말이야.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181쪽)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란 마음은 ‘지훈’이 헤어진 연인에 대한 사랑을 기억하며 검색한 ‘사랑해’라는 말에 담긴 사랑의 의미를 들려주는 「사랑의 단상 2014」에서도 만날 수 있다. 그것이 세월호 사건으로 죽은 아이들의 친구와 부모라는 것. 현재 우리가 겪은 이태원 사고로 떠난 이들의 친구와 가족의 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건 당연하다. 어떤 경로와 어떤 형태든 우리는 누군가와 닿고 있고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비록 곁에 있이 않더라도 부재로 존재하는 사랑은 기억하는 일로 시작되고 간직된다는걸.

 

한번 시작된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고, 그러니 어떤 사람도 빈 나무일 수 없다고, 다만 사람은 잊어버린다고, 다만 잊어버릴 뿐이니 기억해야 한다고,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고. ( 「사랑의 단상 2014」, 211쪽)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통해 미래를 기억하는 일을 마음에 새긴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일, 어떤 절망과 슬픔에서도 희망의 방향으로 나가는 일, 두 번째 바람을 맞이하며 그다음을 살아가는 일이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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