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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전원경 저
arte(아르테) | 2018년 04월

 

 

[review] http://blog.yes24.com/document/10415476

[character]

 

구스다프 클림트 (Gustav Klimt, 1862. 07. 14 ~ 1918. 02. 06)

 

구스다프 클림트는 186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1918년 타계할때까지 쭉 빈에서만 살았던 화가다. 그래서 이 화가를 이해할 때에는 '빈'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탐구하는 과정은 대단히 중요하다.

 

흔히 클림트를 '황금의 화가'라고 부른다. 실제로 클림트는 자신의 작품에 황금을 녹여 얇게 바르는 기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클림트를 단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황금보다는 '빈의 화가'가 더 적절하다.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부유하지만 묘하게 시대착오적이고 허세에 빠져있던 도시 빈의 모순을 클림트의 그림들은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클림트의 삶도 그림 만큼이나 모순적이다. 열명 넘게 사생아를 낳을 정도로 여자관계가 복잡했지만 죽을때까지 결혼은 하지 않았다. 빈의 모습을 몸서리치게 싫어하면서도 파리나 런던 등 유럽의 다른 도시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며, 관능과 억눌린 정열로 들끓는 여인들의 초상화에 집중하던 시기에 극도로 고요하고 관조적인 풍경화를 동시에 그려냈다.

 

클림트는 일단 스케치를 여러 장 하면서 구상을 가다듬고 그 후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이었다. 이 때문에 한장의 작품을 완성시키는데 몇 년씩걸리는 일도 있었다.

 

클림트는 말년에 동양문화에 심취해 일본의 목판화인 우키오에,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와 그림을 수집해 집안을 장식했다. 클림트는 집에서 매일 아침마다 그림을 그리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였는데, 간혹 아침 스케치를 거르는 날이면 응접실에서 일본 미술에 대한 책을 읽곤 했다.

 

클림프는 19세기말, 유럽에 광범위하게 불어닥친 "자포니즘"에 빠져있었다. 특히 클림트를 사로잡은 것은 일본 가면극인 '노'의 가면들이었다. 가면의 색과 마감, 장식 등의 영향은 1916년 그려진 <프리데리케 마리아 배어의 초상>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프리데리케 마리아의 초상, 1916)

 

클림트는 1918년 1월 11일 아침, 1층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그리다 갑자기 쓰러졌다. 뇌출혈이었다. 그리고 쓰러지는 순간 달려온 여동생 헤르미네에게 "에밀리를 불러와!"라고 소리쳤고, 이후 클림트는 다시 회복하지 못한다. 클림트는 늘 죽음을 두려워 했다고 한다.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60세가 되기전에 뇌출혈로 쓰러질 것이라는 공포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포를 피하기 위해 극도로 조심스러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의 키는 중간이었으나 몹시 건장한 체격이었고 아침마다 빌리에서 쇤부른 궁 근처까지 걸으며 체력을 다졌다. 그러나 운명의 힘은 예상보다 훨씬 더 집요했다. 1918년 그의 나이 막 56세를 맞고 있었다. 클림트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안고있었다는 것은 그의 그림 <죽음과 삶>에도 잘 나타나있다.

 

 (죽음과 삶, 1910~1915)

 

 

클림트가 60세가 되기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며 그렸다는 <죽음과 삶> 이 그림은 말년에 그린 것으로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 작품이다. 그리고 3년뒤 클림트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죽음과 삶>은 클림트가 <키스>이후 심혈을 기울여 완성해낸 걸작이었다.

 

해골 모양을 한 '죽음'은 십자가로 장식된 의상을 입고 몽둥이를 꼭 쥔채, 클림트가 사랑했던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삶'에게로 다가온다. 그림의 오른편 하나로 뭉쳐진 '삶'에는 다양한 군상들이 있다. 아가와 어린이, 여자와 남자, 노인들 그들은 모두 환상에 빠져있거나 행복 또는 절망감에 접은 상태다. '삶'의 다양한 군상들은 하나같이 목전에 온 '죽음'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다. 꿈과 같은 이 '삶'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전혀 드리워져 있지 않다. 그러나 '죽음'은 그들의 코 앞에까지 와있다. 클림트의 그림치고는 이례적으로 배경이 온통 적막같은 어둠에 싸여있다. 애당초 그림의 배경을 황금빛으로 정했다가 초록빛 도는 검정으로 바꾸었다.

 

클림트의 그림은 생전에 높은 가격에 팔렸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많지 않았다. 클림트는 재산을 관리하거나 투자하는데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살며 아낌없이 돈을 썼고 그의 모델들에게도 넉넉하게 모델료를 지불했다. 클림트가 세상을 떠난 후 아틀리에에 남아있던 미완성작을 포함한 그림들은 에밀리와 남은 가족들이 나누어가졌다. 그리하여 한때 아틀리에를 가득 채웠던 클림트의 그림들은 덧없이 흩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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