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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도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저/이영의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5점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당시 스탈린 치하의 노동수용소 실태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간결하고도 세련된 문체, 그리고 가혹한 중노동 생활을 겪으면서도 목청 높은 정치적 구호나 비판 보다는 담담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그러나 강도있게 한 인간의 비극을 그려나가는 작가의 예술적 재능에 높은 관심을 받게된 작품이다.

 

 

지나치게 예술적인 것은 이미 예술이 아니에요. p.101

 

예술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말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p.102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의 저자는 알렌산드르 솔제니친이다. 러시아의 양심이라고도 불리우는 저자 솔제니친은 원래 평범한 시골의 교사로 재직하다가 제 2차 세계대전 전 후, 병사로 소집되었고, 전쟁에는 포병 중대장으로 조국 전쟁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1945년 이후부터 1956년 소연방 최고재판소 군시의관회의에서 복권되기까지 유형지를 돌며 수용소 생활을 경험한다. 그는 자신이 정치적 현실 속에서 직접 목격한 역사적 사건과 시대적 비극에 대하여 글을 쓰기 시작하여, 단순하고 소박한 언어로 강제노동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작품들을 발표하게 된다.

 

두명의 딸과 아내를 둔 평범한 농부였던 슈호프는 독소전 참전 중인 1942년 2월 그가 속해있던 부대가 북서부 전선에서 완전히 포위되면서 독일군에게 잡혀 포로가 된다. 그러나 슈호프는 독일군으로 부터 도망쳐 나오면서 얼마의 기간 동안 숲과 늪을 헤메인 끝에 우군 부대를 만나게 된다. 우군을 만났다는 안도감도 잠시 슈호프는 간첩 행위자로 오인되어, 강제 노동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는데, 사실 슈호프가 포로로 있던 시간은 겨우 이틀간이었다. 슈호프의 죄는 반역죄이다. 수감 된지 8년째인 1월의 어느 추운날, 어김없이 5시에 기상을 한 슈호프는 몸에 이상신호를 감지한다. 그러나 슈호프는 밖으로 나가 주어진 작업을 해나간다. 그리고 그날 저녁 슈호프는 눈앞이 캄캄한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라고 생각하며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들면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의 내용은 마무리 되어진다. 

 

저자 솔제니친의 작품 배경은 바로 자신이 생활하고 목격했던 수용소이다. 그 곳에서의 반복적인 일상 중 하루를 드러내고 있는『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비롯하여『암병동』이나 『제 1영역 안에서』,『수용소 열도』등이 대표적이다. 솔제니친은『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발표하면서 소련의 문단 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1970년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되었으나 소련에서는 그의 문학 작품들이 반체제적이고 반소적인 목적을 위해서 씌여졌으며, 서구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솔제니친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주장하며, 노벨상에 대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그와 동시에 솔제니친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소련작가동맹에서 거부되고 외면당하게 되었다. 이로인해 그의 작품들은 그의 조국의 독자들과는 멀어진 채, 대부분 국외에서 발표되는 비운을 맞이한다. 솔제니친은 작가동맹과의 계속적인 반목과 정치적인 억압 상태에서 작품활동을 하다가, 1974년 2월 소련 당국에 체포되어 스위스로 강제 추방당하게 된다. 강제적으로 스위스에 망명가게된 솔제니친은 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오랜 기간 망명 생활을 하던 그가 러시아로 귀환한 때는 1994년으로  러시아의 정치 개방이후였다. 러시아로 돌아와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활동을 계속 이어갔으며, 말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대통령에게 지지와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푸틴도 사상적으로 솔제니친을 따랐다. 그러던 중  솔제니친은 2008년 89세의 나이로 모스크바에서 사망하게되는데, 솔제니친의 사망에 대해 푸틴은 "러시아의 큰 손실" 이라 말하기도 했다

 

슈호프가 생활한 수용소의 기상시간은 오전 5시였으며, 점호시간은 밤9시 잠자리에 들때면 밤 10시에 가까웠다. 그 사이 사이에 수용소 사람들은 먹고, 작업을한다. 그런식으로 슈호프는 무려 10년을, 날수로 계산하면 3,653일을 보냈다. 하지만 그 수용소는 아무런 범죄 행위를 한 적이 없고 어떤 특별한 정치적 임무를 갖고 활동한 적도 없으며, 심지어 특별한 정치 사상을 가져본 적도 없는 평범하고 단순한 인물인 슈호프와 대비 되는 곳이었다.『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의 슈호프와 수용소의 대비는 당시의 지배 이데올로기의 아이러니와 모순을 날카롭게 드러내준다. 슈호프 뿐만 아니라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 등장하는 모든 주변 인물들, 반장 추린이라던가, 전직 영화감독이었던 체자리, 페추코프, 심지어 수용소의 간부들 조차도 어떤 정치적 신념을 갖고 있다기 보다는 정치적 희생물로 그림으로써『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버림받은 이들의 비참하고 비극적인 일상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해설을 참고하였을 때, 솔제니친의『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다양한 인간의 삶과 다양한 형태의 인간을 그리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다. 다양한 등장 인물들은 갖가지 성격을 가짐으로써 수용소 내부의 부패되고 모순된 소집단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스탈린 시대의 사회 축소판으로 부패된 정치권력과 사회적 생활상, 모순되고 획일적인 비인도적 사회제도, 종교문제, 인간의 본성까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는 것 또한 알수 있다.

 

그러나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라는 작품은 필자에게 다소 버거운 느낌이었다. 뭔가 갑갑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어떤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의 반복 중 단 하루를 나타낸 이 작품을 필자가 다소 어렵게 느낀 이유는 러시아에 대하여 잘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갑갑함 느낌 속에서도 흥미로웠던 점이있었다. 하나는 수용소 내에서 한국전쟁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나온다는 것이었으며, 또 하나는 유시민 작가가 썼던「항소이유서」에서 유명해진 문장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라는 문장이 바로『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의 서문에 나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민음사에서 출판 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서는 확인 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필자에게『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다시 한번 시간 내어 곱씹어 읽어봐야하는 도서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확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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